프랑스의 유럽연합(EU)헌법 부결로 미국에 대항할 거대 단일시장 구성을 추진해왔던 유럽의 꿈이 깨질 위기에 놓였다.


이번 프랑스 국민투표 결과는 계속되는 경기침체 속에서 EU 통합이 오히려 일자리를 줄이는 등 '경제적 실익이 없다'는 불만이 서유럽국가에 확산되고 있음을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자유무역으로 치닫던 유럽 내 경제기류가 이번 일을 계기로 '자국 이기주의'로 돌아설지 모른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일부 전문가들은 앞으로 유럽경제가 저성장·저물가라는 스태그플레이션에 직면할 가능성이 높으며 유로화도 달러 등 주요국 통화에 대해 약세를 면치 못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경제난에 밀린 통합론


프랑스 유권자의 과반수가 EU헌법에 반대표를 던진데는 일자리가 줄어들고 있는 현실에 대한 불만이 가장 큰 이유였던 것으로 분석된다. EU 통합으로 역내 국가 간 노동시장 장벽이 허물어져 저임금의 동구권 인력들이 대거 유입됐고 그 결과 일자리만 뺏겼다는 인식이 강하게 작용했다는 지적이다.


프랑스 여론조사 회사인 입소스가 국민투표를 앞두고 반대 이유를 설문조사한 결과에서도 이 같은 노동시장 자유화를 담은 EU헌법의 신자유주의에 대한 반감이 다수를 차지했다.


실제 프랑스의 실업률은 지난달 10%를 넘어 취업난에 대한 우려를 증폭시키고 있다.


문제는 이 같은 일자리 감소가 경제성장률을 떨어뜨리는 악순환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유럽 집행위원회(EC)는 최근 프랑스의 올해 경제성장률을 2.2%에서 2%로 낮췄다.


그나마 프랑스의 기업실사지수는 지난해 말 이후 줄곳 감소 추세인 데다 제조업 생산도 줄어들고 있어 올해 경제성장률이 더 떨어질 것이란 관측이 나오고 있다.


◆경기침체 가속화될 듯


프랑스의 EU헌법 부결 여파는 당장 유로화 가치 하락으로 이어지고 있다.


유로화는 지난 27일 7개월 만에 최저 수준인 유러당 1.2539달러로 떨어진 데 이어 국민투표 결과가 전해진 30일엔 1.2518달러로 하락했다. 지난해 말 사상 최고였던 유로당 1.3636달러에 비해서는 8% 이상 떨어진 수준이다.


유로존 전체의 경기전망도 좋지 않다. 유럽중앙은행(ECB)은 6월2일 열리는 정례회의에서 올해 유로존의 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1.6%에서 1.4%로 낮출 것이라고 이날 블룸버그 통신이 보도했다. 이 경우 ECB는 최근 6개월 사이에 세번이나 성장률 전망치를 낮추는 셈이다.


ECB가 성장률 전망치를 하향 조정하는 것은 프랑스와 함께 독일 이탈리아 등의 경기지표가 악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독일 정부는 올해 경제성장률을 당초 1.6%에서 1%로 크게 낮췄다.


이탈리아 역시 당초 2.1%로 예상됐던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지난달 1.2%로 낮춘 데 이어 지난 17일에 0.6%로 다시 하향 조정했다.


독일과 이탈리아는 다른 유럽국가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보호무역주의가 더 강한 곳으로 평가되고 있어 이 같은 경기 위축이 EU 내 자유무역 분위기를 후퇴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란 분석도 있다.


◆유럽통합 어떻게 될까


프랑스의 유럽헌법 부결로 EU 회원국 신규가입 일정은 상당한 차질을 빚을 것으로 보인다. 우선 터키 불가리아 루마니아 등이 예정대로 EU에 가입할 수 있을지 미지수다.


터키는 오는 10월부터 EU 가입을 위한 협상이 계획돼 있지만 프랑스의 유럽헌법 부결 이후 터키의 가입을 반대하는 목소리가 커져가고 있다. 2007년 이후로 예정된 불가리아와 루마니아의 EU 가입도 순탄치 않을 전망이다.


하지만 EU 지도자들은 유럽헌법 비준절차를 계속 밟아 나가겠다는 입장이다. 헌법의 일부 조항을 바꾸는 재협상도 있을 수 없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다음달 16일 열리는 유럽정상회의에서 EU지도자들이 어떻게 돌파구를 마련할지 관심이다.


김호영 기자 hy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