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부동산거품 논쟁 다시 가열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미국에서 해묵은 집값 거품 논란이 다시 가열되고 있다. 지난 1분기 경제성장률이 3.5%로 예상보다 높게 나온 데 따라 미국 경제를 뒷받침하는 주택부문의 과열 여부가 다시 쟁점으로 부상하고 있다.
뉴욕타임스와 격주간지 포천 등 현지 유력 언론들은 최근 잇따라 머리기사로 집값 거품 붕괴를 경고하고 있는 반면 당국은 강한 경제 체력(펀더멘털)을 반영한 것일 수도 있다며 부동산가격 안정 대책은 불필요하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워싱턴포스트는 지난달 30일 "미국 정부가 추진해왔던 주택보유 확대 정책이 국가적 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며 강도 높은 경고를 제시,관심을 끌고 있다.
주택을 담보로 한 장기대출 상품인 모기지 자금을 썼던 사람들이 최근 모기지 금리가 올라가자 자금을 갚지 못해 집을 경매에 부치는 사례가 속출하는 등 파산이 늘고 있다는 지적이다.
◆부동산 호황 속 늘어나는 경매
이 신문에 따르면 미국 북동부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에서만 최근 한 달 새 1000가구가 경매 시장에 쏟아져 나왔다. 지난 2000년 매달 300~400가구였던 경매물량이 세 배 가까이 늘어난 것이다.
연방기금 금리가 잇따라 인상되면서 대부분의 미국인이 집을 살 때 의존하는 모기지 금리도 함께 올라 무리하게 집을 장만했던 사람들의 이자 부담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부동산 투자가 계속 늘고 집값도 상승하는 호황이 이어지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지난 4월 미국에서 사상최고치인 718만가구(연율 기준)의 주택이 판매된 가운데 전국 평균 집값은 처음으로 20만달러를 돌파했고 뉴욕시 등 연안 도시는 5년 새 두 배로 뛰었다.
◆거품 VS 펀더멘털
이에 따라 현재 부동산 시세가 거품이냐 아니냐를 둘러싼 논란이 어느 때보다 뜨거워지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1980년대 미국 평균 집값이 7년간 14% 오른 후 로스앤젤레스의 주택 가격은 20% 넘게 폭락했다"며 거품이 터질 때가 머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최근 10년 동안 집값이 이미 47% 오른 데다 캘리포니아의 경우 임대료 대비 35배에 육박한다는 것이 주요 논거다.
반면 예일대 경제학부가 지난해 하반기에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미국인들은 연평균 20%의 집값 상승이 향후 10년이나 유지될 것으로 내다봤다.
로저 퍼거슨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부의장도 최근 "경제 펀더멘털이 좋아서 자산 가격이 오르는 것일 수도 있다"며 "거품에 대응하기 위해 긴축정책을 쓰지는 않겠다"고 말했다.
◆변수는 모기지 금리
지금의 부동산 붐을 초래한 것이 저금리였던 만큼 앞으로 부동산 경기를 좌우할 요소도 금리가 얼마나 가파른 상승세를 타느냐에 있다는 것이 대체적인 분석이다.
미국 금융 당국은 2000년 증시 붕괴에 따른 충격에서 미국 경제를 구하기 위해 저금리 정책을 펴 30년만기 모기지 금리는 2003년 6월 사상최저치인 5.21%까지 떨어졌다.
이 덕분에 미국인들은 2001년부터 지금까지 기존 대출을 금리가 낮은 대출로 바꾸는'리파이낸싱'을 통해 무려 6620억달러의 여윳돈을 마련했다.
미국인들은 이 가운데 3분의 2를 소비에 투입해 미국 경제의 고성장을 도왔던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미국의 영향력 있는 경제연구단체인 이코노미닷컴은 집값 상승과 리파이낸싱 효과가 없었다면 지난 3년 동안 미국의 연간 경제성장률은 실제보다 0.7%포인트씩 낮았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30년 만기 모기지 금리는 지난 주말 현재 연 5.65%에 달한다. 이제 호황 때와 같은 리파이낸싱은 불가능해졌으며 부동산 투자도 점차 줄어들 것이란 뜻이다.
앨런 그린스펀 FRB 의장은 2년 전 부동산 가격 거품 문제를 처음 제기하면서 "거품인지 아닌지는 터져봐야 안다"고 언급했다. 하지만 포천은 최신호에서 "시장이 비이성적인 힘에 의해 지배되고 있다면 언젠가 반드시 거품이 터지게 돼있다"고 경고했다.
정지영 기자 co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