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역사학자들은 1905년 을사조약과 1910년 한.일합병 조약이 국제법적으로 문제가 없으며 당시 국제 열강들도 이를 인정했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일제의 식민정책으로 한국에 근대성이 나타나는 긍정적 효과가 있었다는 인식을 갖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 같은 사실은 지난 2002년 3월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한.일 정상이 합의,발족된 '한일역사공동연구위원회'가 31일 활동을 마감하면서 제출한 최종 보고서에서 드러났다. 위원회는 총 19개의 쟁점별 입장 차이만을 확인,이를 나란히 게재하는 것으로 논란을 일단락 지었을 뿐 연구 결과를 일본 역사교과서에 반영토록 한 애초의 취지는 달성하지 못했다. 양국 학자들은 근.현대사 부문에서 가장 첨예한 의견대립을 보였다. 일본의 식민정책에 대해 우리측은 일제의 수탈적 식민지배에 초점을 맞춘 반면 일본은 과학적 경영기법의 도입,대규모 백화점의 출현 등 근대성이 나타나는 긍정적 효과가 있었다는 입장을 보였다. 일제 말 전시 강제동원에 대해서도 우리측은 한국인을 황국신민으로 만들기 위한 폭압통치의 결과라는 주장인 반면 일본은 한국인의 저항이 별로 없었다는 인식을 갖고 있었다. 1965년 체결된 한.일협정과 관련,일본측은 일본 정부의 배상.보상의무는 소멸됐다는 주장을 펼친 반면 우리측은 당시 일본 정부가 청구권 자체를 인정하지 않았던 만큼 여전히 배상 의무가 일본 정부에 있다는 논리를 내세웠다. 북.일 수교가 이뤄지지 못하는 원인과 관련,일본측은 납치와 핵문제 등 북한이 야기한 문제가 원인이라고 주장했고 우리측은 일본이 군사대국화를 추구하면서 과거사에 대한 근본적인 반성이 없었다는 점을 지적해 인식차를 드러냈다. 중세사에서도 일본측은 조선통신사를 '가상의 조공사절'로 간주해 문화교류 상징이라는 우리측의 역사 해석과 큰 차이를 보였다. 이심기 기자 s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