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착 못하는 공모제 노무현 정부 초기 공기업 CEO를 뽑을 때는 경쟁이 치열해 걱정이었는데 요즘은 여간해서는 1차 공모에서 적임자를 찾기가 어려워졌다. 그만큼 청와대의 고민도 깊어가고 있다. 지난달 26일 열린 청와대 인사위원회에서도 가스공사 사장 후보로 추천된 3명의 인사를 놓고 토론을 벌였지만 결국 재공모로 결론을 냈다. 상장기업인 가스공사를 이끌 만한 경영능력과 비전,그리고 개혁성을 겸비한 사람을 찾을 수 없었다는 이유에서다. 앞서 인천국제공항공사는 3차 공모에서도 적임자를 못 찾아 4차 공모가 진행 중이다. 국민연금관리공단도 3차 공모 끝에 간신히 김호식 전 해양수산부 장관이 신임 이사장에 내정된 상태다. 지역난방공사와 한국조폐공사는 1차 공모에서 마땅한 인물을 찾지 못해 2차 공모 절차를 진행 중이다. 이밖에 상당수 공기업들이 재공모 등 진통을 거쳐 CEO를 선임하면서 장기간 경영 공백상태에 빠지는 문제점도 노출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청와대가 '입맛에 맞는 인물'을 고르느라 각 공기업 사장추천위원회가 추천한 인사들을 퇴짜놓고 있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공모제의 딜레마 공모제가 자리잡지 못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공기업 CEO에 응모한 후보자들이 탈락할 경우 그 자체가 일종의 흠집으로 작용하는 사회적 풍토 때문이다. 최근 들어 기관장 인선 기준이 더욱 까다로워지면서 정작 능력있는 인사들의 응모 기피 현상도 두드러진다. 후보가 됐다는 것 자체가 정부 '인재 풀(pool)' 내에서 중요 인물로 평가되기보다는 CEO가 못됐을 때 체면을 구기고 아예 응모하지 않은만 못한 것으로 인식된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청와대가 공모시스템 자체를 뒤집는 것도 사실상 불가능한 실정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청와대가 후보를 낙점해 그 인사를 응모케 할 수도 없고 공모 대신 바로 임명하는 것도 어려운 상황"이라고 하소연했다. 만약 후보를 사전에 낙점한다면 '무늬만 공모'라는 비판에 직면할 수밖에 없고,과거처럼 직접 임명도 '낙하산 인사'나 부적격 인선이란 시비를 피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최근 노무현 대통령이 중앙인사위원회에서 "낙하산 인사라는 말에 대해 다시 한번 정리할 필요가 있다"고 언급한 것도 이 같은 청와대의 고민을 반영한 대목이다. ○대안은 없나 일단 인재 풀을 넓혀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낙하산 인사 시비의 타깃이 됐던 군 출신이나 업무와 무관한 정치인이 아니라면 폭넓게 인재를 등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1,2차례 공모에서 적임자를 찾지 못하면 정부가 직접 임명권을 행사하는 것도 대안으로 거론된다. 정부 정책을 대리하는 공기업 CEO를 직접 임명할 경우 경영 공백을 최소화하면서 정책 일관성도 지킬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이 경우 정부의 과도한 개입과 정치적 활용 등의 부작용에 대한 예방장치가 선행돼야 한다는 과제가 있다. 아울러 공모제에 대한 잘못된 사회 인식을 바꿔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후보로 추천됐다 탈락하더라도 결함이 있는 것으로 비쳐지거나 다른 직위에 응모했을 때 약점으로 작용하는 풍토는 사라져야 한다는 얘기다. 김용준 기자 juny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