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기업 업그레이드] 기관장 ≠ 은퇴전 거쳐가는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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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기업 최고경영자(CEO) 자리에 대한 정부와 공기업 안팎의 인식이 변하고 있다.
과거 공기업 CEO는 퇴직 관료나 정치인들이 은퇴 전에 거쳐가는 자리 또는 '선거 공신'들에 대한 보상 정도로 인식됐었다.
하지만 노무현 정부 들어 공기업 CEO는 잘하면 새로운 도약을 위한 발판이 되고,못하면 중도에 사퇴할 수 있는 긴장감이 감도는 자리로 변모하고 있다.
당초 정부의 공기업 CEO 인선의 양대 원칙은 공모제와 연임 불가(임기 보장)로 요약됐다.
과거 정권의 낙하산 인사 고리를 끊고 인재를 두루 모으는 방안이 공모제였고,관료들이 몇차례씩 '돌아가며 해먹는 자리'라는 인식을 깨겠다는 것이 연임 불가였다.
하지만 두번째 인사원칙(연임 불가)은 수정됐다.
기획예산처는 지난 5월 초 공기업 경영평가에 따라 연임도 가능하다는 방침을 밝혔다.
반면 경영성과가 좋지 않으면 임기 중이라도 교체할 수 있다는 점도 분명히 했다.
이처럼 공기업 인사원칙에 중대 변화를 가져온 계기는 바로 오영교 행정자치부 장관이었다.
그는 KOTRA에서 이룬 '혁신'을 높이 평가받아 현 정부 들어 첫 공기업 CEO 연임 기록을 남긴 데 이어,청와대 비서관을 거쳐 정부 개혁을 이끄는 행자부 장관으로 영전한 것이다.
장관이 되어서도 그는 '혁신 전도사'로 불리며 정부 조직 혁신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오 장관의 사례는 정부 관료들에게 '공기업 기관장=퇴임을 준비하는 자리'라는 등식이 더 이상 성립하지 않는다는 인식을 심어줬다.
해마다 경영평가를 받아 성적표가 나오므로 자리 보전하며 대충 지내기도 어려워졌다.
당초 연임 불가를 외쳤던 정부가 처음 연임을 허용하게 된 계기도 오 장관의 KOTRA 개혁 성과와 무관치 않다.
하지만 현 정부 들어 연임한 공기업 CEO는 오 장관 외에 지방 공기업 한두 곳을 제외하곤 거의 찾아볼 수 없다.
반대로 중도 하차한 케이스도 나오고 있다.
청와대 사정과 한때 퇴임 거부 파문을 몰고온 오강현 전 가스공사 사장이 대표적인 예.오 전 사장은 나름대로 경영성과를 냈지만 평일에 골프를 친 것 등이 문제가 돼 사임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또 유건 전 관광공사 사장은 경영실적이 좋지 않게 나오자 스스로 물러나기도 했다.
일부 공기업 기관장들은 정부부처의 퇴임 권고에도 불구하고 버티면서 자리를 유지하는 사례도 있다.
이 같은 분위기를 반영하듯 최근 H씨 등 일부 공기업 기관장은 기대하지 않았던 성과를 내면서 장관 하마평에 오르내리기도 한다는 게 청와대 관계자의 전언이다.
이처럼 공기업 CEO에 대한 인식이 바뀜에 따라 공기업들도 저마다 혁신을 외치며 갖가지 아이디어를 짜내고 있다.
또 내부 승진도 심심치 않게 나와 공기업 간부들도 잘 하면 CEO에 오를 수 있다는 기대를 갖게 됐다는 전언이다.
하지만 일부 공기업들은 공모를 통해서지만 아직도 정치권 인사가 CEO 자리에 임명되는 사례가 나타나고 있고 혁신이 또 다른 도그마로 작용,오히려 조직에 스트레스를 주는 부작용도 나오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혁신임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한 공기업 CEO를 장관으로 발탁한 '오영교 모델'이 어느 정도 바람직한 방향으로 확산될지는 아직 미지수다.
김용준 기자 juny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