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건을 잘 팔려고 노력하기 전에 먼저 잘 팔릴 수 있는 제품을 만들어야 합니다."


손동창 퍼시스 회장(57)은 직원들에게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이같이 강조한다. 세계적으로 '일류기업'으로 존경받고 장수하는 기업들의 공통적인 특징은 "고객에게 제공하는 제품이 매우 우수하다"는 점이라는 게 그의 지론이다.


손 회장은 지난 83년 서울 성수동의 작은 공장에서 사무용 가구업체를 설립한 이래 '우수한 제품론'을 바탕으로 20여년 만에 가구업계의 '일류기업'을 만들어냈다.


퍼시스는 지난해 극심한 내수불황 속에서도 1625억원의 매출을 기록,전년에 비해 8% 성장했다. 당기순이익도 236억원으로 2003년의 174억원에서 껑충 뛰었으며 1000억원 이상의 순현금자산을 보유하고 있는 알짜 회사다. 퍼시스는 9000억원 규모로 추정되는 사무용 가구시장에서 15% 이상의 점유율로 부동의 1위를 차지하고 있다.


4대 브랜드 사무용 가구 회사만 놓고 보면 점유율이 50%가 넘는다. 퍼시스는 가구업체로는 드물게 해외 시장도 적극 공략하고 있다. 지난해 '퍼시스'란 자체 브랜드로 전 세계 40여개국에 1300만달러어치의 사무용 가구를 수출했다.


퍼시스가 이처럼 탄탄한 중견 기업으로 자리잡은 가장 큰 요인은 손 회장의 '기본에 충실한 내실 경영'이다. 그는 창업을 준비하면서 "훌륭한 가구 회사보다는 제대로 된 회사를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을 더 많이 했다"고 말한다.


손 회장은 '제대로 된 회사'란 △인체의 혈액 같은 기업의 재무와 수익 구조가 건강해야 하고 △인사 및 재무를 비롯한 경영 전반에 원칙과 투명성이 배어 있어야 하고 △기업 활동 하나하나가 시장의 원리에 충실한 회사라고 설명한다.


손 회장은 이 같은 원칙을 가지고 외부의 돈을 빌려 외형을 키우거나 사업을 확장하기보다는 우수한 사무용 가구 제품을 만들어 내는 데 충실했다. 90년대 들어 가구회사들이 앞다퉈 사업 다각화와 확장 경영에 나설 때도 마찬가지였다.


이는 외환위기가 닥쳐 상위권 가구업체들이 줄줄이 쓰러질 때도 감원이나 감봉 없이 불황을 극복하는 원동력으로 작용했다. 99년부터는 퍼시스를 포함한 관계사들이 이자비용을 한 푼도 내지 않는 '무차입 경영'을 해오고 있다.


손 회장은 회사 설립 이후 10여년간 제품 연구 개발에만 온 힘을 쏟아 부었다. 89년에는 가구업계 최초로 과학기술부 인증 기업 부설 가구연구소를 설립,새로운 디자인의 시스템가구를 선보이며 사무용 가구시장을 주도해 왔다.


퍼시스는 그동안 가구업계가 안고 있던 불합리한 유통 구조 개선을 위해 많은 노력을 해왔다.


대표적인 사례가 본사의 특판부서를 없애고 판매를 전적으로 대리점에 맡긴 것이다. 같은 고객을 대상으로 본사와 대리점이 서로 경쟁해서 발생하는 가구업계의 고질적인 병폐를 해소하기 위해서였다.


또 가격정책의 일관성을 유지해 수익 악화를 가져오는 덤핑판매 등과 같은 영업을 근절했다. 손 회장은 "건전한 기업 활동과 기업 경쟁력에 대리점 및 협력업체와의 신뢰구축은 매우 중요하다"며 "최일선에서 소비자를 만나는 대리점이 활력을 갖고 뛸 수 있도록 최대한 지원해 왔다"고 설명했다.


퍼시스는 생산비 절감을 위해 국내외 외주생산이 주류를 이루는 가구업계 풍토 속에서도 대부분의 부품과 제품을 자체적으로 만들고 있다.


오히려 핵심 부품에 대한 설비 투자와 기술 개발을 늘리고 있다. 가구제품뿐 아니라 사후서비스(AS) 물류 납품 등 일련의 서비스 과정도 담당 조직을 전문화해 운용하고 있다. "제품의 품질과 서비스를 남의 손에 맡길 수 없다"는 손 회장의 신념 때문이다.


손 회장은 "국내 가구업계는 시장에서 가격은 중국 제품에 밀리고,디자인은 유럽 제품에 뒤처지는 불안한 상황에 처해 있다"며 "국내뿐 아니라 세계 시장에서 중국 및 유럽과의 경쟁에서 이겨내 일류기업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결국 얼마나 우수한 제품을 만들어 내느냐가 관건"이라고 재차 강조했다.


송태형 기자 toughl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