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EU)헌법이 프랑스에 이어 네덜란드에서도 압도적 표차로 부결됐다. 이에 따라 유럽을 합중국처럼 정치·경제적으로 통합하려는 50년에 걸친 꿈이 무산될 기로에 처했다. 또 동유럽 국가들은 서유럽 국가들에 "EU헌법 부결을 우리 탓으로 전가하지 말라"고 반발하는 등 뿌리 깊은 동서간 갈등까지 다시 고개를 들고 있어 유럽통합이 후퇴할지도 모른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2일 파이낸셜타임스에 따르면 EU헌법이 잇따라 부결되면서 유로화는 급락세를 보이고 있으며 유럽기업들은 불확실성 때문에 투자계획을 늦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특히 유럽 최대 경제국인 독일은 이날 재무장관과 중앙은행 총재가 위기에 빠진 유로화 문제와 관련,긴급회의를 가진 것으로 알려져 EU헌법 부결은 경제문제로 비화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네덜란드도 부결 네덜란드 유권자들은 지난 1일 실시된 국민투표에서 압도적 표차로 EU헌법에 반대했다. 잠정 개표결과 반대 61.6%,찬성 38.4%로 나타나 반대의견이 프랑스(54.9%)보다 더 많았다. 네덜란드 정부는 오는 6일 개표결과를 공식 발표할 예정이다. 이 같은 결과는 예상됐던 일이기는 하지만,다른 나라들의 반대여론을 확산시키는 빌미로 작용하고 있어 '부결 도미노 현상'이 현실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실제로 덴마크와 아일랜드는 EU헌법 비준에 부정적이다. 폴란드도 여론조사 결과 55%의 찬성비율을 보이고 있으나,프랑스와 네덜란드의 부결 여파로 반대여론이 높아지고 있다. 체코 역시 바츨라프 클라우스 대통령이 반대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특히 동유럽 국가들은 프랑스와 네덜란드가 EU헌법 반대 이유로 통합에 따른 일자리 감소를 꼽은 데 대해 서운함을 표출하고 있어 향후 비준절차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당혹해 하는 유럽 정상들 유럽 정상들은 잇단 EU헌법 부결에 대해 차분히 대응해야 한다고 주문하면서도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게르하르트 슈뢰더 독일 총리는 "유럽헌법의 비준을 둘러싼 위기가 절대로 EU전체의 위기가 돼서는 안된다"며 도미노 현상의 확산을 경계했다.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은 네덜란드의 부결이 "유럽 프로젝트 추진에 대한 강한 기대와 함께 의문과 우려를 드러냈다"고 지적했다. 마누엘 바로수 EU집행위원장은 오는 16~17일로 예정된 유럽정상회의에서 회원국 정상들이 향후 입장을 명확히 제시할 때까지 회원국들은 일방적 조치를 자제해달라고 당부했다. ◆정치통합 어떻게 될까 네덜란드의 부결에도 불구하고 비준절차는 계속될 것이라고 유럽지도자들은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정치통합까지는 넘어야 할 산이 많다. EU헌법은 25개 회원국의 만장일치로 발효된다. 회원국 5분의 4 이상이 찬성하면 정상회담에서 상의를 통해 발효를 결정한다는 규정도 있지만 회원국간 의견차이가 크면 발효 가능성은 낮아질 수밖에 없다. 부결국가의 경우 재투표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덴마크의 경우 1992년 마스트리히트조약 비준을 거부하자 조약의 일부 조항을 제외시켜 다음해 재투표로 비준했었다. 그러나 프랑스같은 대국에 조항 변경 또는 제외 등의 특권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시각이 우세하다. 이런 상황을 감안할 때 회원국간 정치적으로 타협할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김호영 기자 hy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