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석주 독일시인 브레히트가 쓴 '분서(焚書)'라는 시는 어떤 시인이 분서목록에서 자기 책들이 빠진 것을 보고 깜짝 놀라 "나의 책을 불태워다오!"라고 집권자들에게 호소하는 내용으로 돼 있다. 히틀러 시대에 있었던 분서 소동을 조롱한 시다. 1935년 5월 베를린대학 광장에서 분서의식이 거행되는데 토머스 만,레마르크,앙드레 지드,에밀 졸라,웰스,프로이트,마르셀 프루스트,아인슈타인,마르크스의 책들이 '퇴폐적 저술'이라는 이유로 불탔다. 이때 분서 대상이 된 작가는 131명이었다. 이밖에 카프카,츠바이크,호프만 스탈과 같은 작가와 후세를,카시러,마틴 부버와 같은 철학자들의 책도 들어 있었다. 거기에 속하지 않은 '양심적인 작가들'은 얼마나 황당하고 괴로웠을까. 그랬으니 "내 책들에서 나는 항상 진실만을 말하지 않았는가?/ 그런데 이제 와서 나를 거짓말쟁이 취급하는 까닭이 무엇이냐/ 나는 너희들에게 명령한다/ 나의 책을 불태워다오!"라고 절규한 것이다. 검열의 역사는 길고 길다. 검열의 역사는 금지의 규범과 모럴에 대한 저항의 역사를 만들었다. 많은 책들이 금지되고 불태워졌지만 그 책들은 질기게 살아남았다. 금서들 중 상당수는 살아남아서 이젠 불멸의 고전으로 추앙받는다. 대부분의 경전들이 그렇듯 성서와 코란도 금서였다. 파스테르나크의 '닥터 지바고'도 금서였고 조지 오웰의 '1984'도 금서였다. 몽테뉴의 '수상록',토머스 모어의 '유토피아'도 금서였다. 허균의 '홍길동전',박지원의 '열하일기',정약용의 '목민심서'도 금서였다. 권력자들은 종교,국가,미풍양속을 거스른다고 '위험한' 책들을 금서로 만들었다. 금서는 "어느 곳에서나 있으면서도,아무 데도 없는" 책이다. 대개의 금서는 '위험한 지식이 담긴 책들'이다. 금서들은 당대에는 음란하고 신성모독적이고 반역사적이라는 낙인이 찍혔다. '위험한 책'들은 주류의 가치체계를 뒤흔들고 권력의 기반을 침식한다. 중상비방과 추문이라는 오물을 뒤집어 쓴 채 금지된 책들이 결국은 낡은 사회를 뒤엎고 새로운 사회를 향해 나아가게 한다. 권력자들이 그런 책에 진저리를 치고 광분하는 것도 그들의 처지에서는 당연한 일이다. 하이네는 책을 태우는 곳에서는 결국 사람도 태울 것이라고 했다. 실제로 금서의 저자들은 감옥에 가고,재산을 몰수당하고,유배를 당하고,처형당했다. '유토피아'를 쓴 토머스 모어는 반역죄로 사형선고를 받았다. 그는 사형 집행리에게 "기운을 내게. 군의 직책 수행을 주저할 필요는 없네. 내 목은 대단히 짧으니 조심해서 자르게"라는 유명한 말을 남기고 의연하게 죽음을 맞는다. 그로부터 83년 뒤 조선에서 '홍길동전'을 쓴 지식인이자 소설가인 허균은 변란을 기도했다는 죄목으로 재판도 받지 못한 채 처형당하고 집안은 풍비박산한다. 토머스 모어는 '유토피아'라는 이상 국가를,허균은 '율도국'이라는 새로운 사회를 꿈꾸었다. 허균이 죽은 뒤 50년이 지나도록 사람들은 금서로 묶인 그의 책을 읽을 수가 없었다. 1980년대에 들어선 제5공화국은 수없이 많은 금서들을 탄생시켰다. 왜? 그들의 눈에는 모든 지식들이 다 권력에 저항하고 잠재적 위협요소가 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제5공화국이 금지했던 그 수많은 책들 대부분은 살아남아 명예를 회복하고 금지의 권력을 휘두른 권력자들은 역사 저편으로 사라졌다. 사람들은 금지하면 할수록 더 많이 갈망한다. 한 모로코 작가는 "책은 살해될 수 없다. 제 스스로 살고 죽는다. 일단 '꽃병'이 '깨지면' 생명의 파편들은 전세계로 퍼져나가고 목소리들은 달아나 모험의 길을 간다. 금서가 있는 곳에 항상 새로운 정신적 만남과 혁명과 향연이 있다"라고 썼다. 불에 태워도 살아남는 게 책이다. 마침 서울국제도서전이 '책으로 세계로 미래로'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어제부터 시작됐다고 해서,금서라는 가시면류관을 쓰고도 살아남아 고전이 된 많은 책들을 마음으로 기리며 이 글을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