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그림과 오랜 비바람에 씻긴 건축물,벽화 속에서 걸어나오는 듯한 신과 인간들,그 속에서 들려오는 음악,한 편의 시로 되살아나는 예술의 혼…. '어느 미술사가의 낭만적인 유럽문화 기행'(정석범 지음,루비박스)에는 이 같은 유럽문화의 정수가 한꺼번에 담겨 있다. '낭만적인'이라는 수식어처럼 읽는 이를 '영혼의 오르가슴'으로 인도하는 예술기행서라 할 수 있다. 홍익대 대학원 석사와 파리1대학 박사과정을 마치고 논문을 준비하며 수원대에 출강하고 있는 저자의 인문학적 에세이. 그의 발길은 서양미술사를 대표하는 여섯 도시로 이어진다. 이탈리아의 피렌체와 베니스,스페인의 톨레도,네덜란드의 암스테르담,프랑스 파리,영국 런던…. 미술사학자답게 그의 시선은 먼저 도시의 시각예술에 가 닿는다. 그리고 그것과 맞물려 있는 시대적 배경이나 문학 음악 종교 등으로 부챗살처럼 퍼져 나간다. 예를 들면 스페인의 고도 톨레도에서 엘 그레코의 그림과 알베니스의 음악 등을 역사와 문화의 맥락 속에서 유기적으로 확인하는 장면 등이 그렇다. 이성을 감성으로 풀어내고 예술을 인문학적으로 설명하면서 진정한 문화의 내면풍경을 보여주는 힘이 여기서 나온다. 그는 도시를 방문할 때마다 중심 테마를 정하고 그 뿌리에서 뻗은 다양한 코드의 줄기를 함께 비춘다. 물의 도시 베니스를 오페라라는 프리즘으로 조명할 때,그는 베네치아 화파와 시·음악이 한데 어우러진 예술의 하모니를 발견한다. 렘브란트와 고흐의 숨결이 살아 있는 암스테르담을 무한한 자유의 해방구라는 관점에서 훑는 것도 재미있다. 르네상스의 중심지인 피렌체에서 반르네상스적 움직임에 주목하거나 화려함의 상징인 파리를 소외된 사람들의 도시로 보는 시각 또한 신선하다. '딱딱한 이성의 목침보다 부드러운 감성의 베개 위에 누우려 했다'는 그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신비스러운 예술의 속살이 엷은 커튼 사이로 천천히 드러나는 모습을 이 책에서 발견할 수 있다. 222쪽,1만3800원. 고두현 기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