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재명 < MK픽처스 사장 shim@myungfilm.com > 영화일을 하면서 기쁘고 감사해야 할 점은 좋아하는 것을 업으로 삼으면서 돈까지 벌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영화일에 치여 정작 그토록 좋아하는 '영화보기'의 즐거움을 맘껏 누리지 못하는 것이 또한 현실이다. 바쁜 와중에도 두 번 보는 경우가 가끔 있다. 지난해 국내 개봉되기에 앞서 어렵게 구한 비디오테이프로 본 일본 영화 '아무도 모른다'가 그 작품인데 얼마 전 극장에서 한 번 더 보았다. 두 번 보고도 또 보고 싶은 훌륭한 영화였다. 1987년 도쿄에서 실제로 있었던 사건. 출생신고도 돼 있지 않아 세상에 살고 있으면서도 존재하지 않는,세상 어른들이 그들의 존재를 모르는 '버려진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다. 실제 사건의 정황은 거의 '공포영화' 수준만큼 참혹하나 이 영화의 감독 고레다 히로카즈는 버려진 아이들의 참혹함을 영화로 생중계하는 식이 아니라 그 아이들의 '내부'로 들어가 이야기를 풀어냈다. 놀라운 점은 감독의 시선이 집 밖으로 나가지 못하는 아이들과 좁아 터진 방 안에서 함께하며 그 아이들과 눈을 맞추고 미소지으며,그들의 어깨를 부드럽게 토닥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어른이 버린 아이들의 고통을 그저 밖에서 바라보며 공분을 유도하거나 고발하는 것이 아닌,처절하도록 힘겨운 삶을 살아내는 아이들의 마음 속은 과연 어떤 것일까를 읽어내고자 하는 감독의 속 깊은 마음과 눈이 느껴져 존경스럽기까지 했다. 영화를 본 이후의 감동 때문에 이 영화에 관련된 정보와 감상들을 찾아 여기 저기 인터넷 사이트를 돌아다녔다. 며칠 전 누군가의 블로그에서 고레다 감독의 '감독 노트'를 번역해 놓은 것을 읽었다. 실화에서 출발했으나 실화를 기초로 했다기보다는 영감을 얻어 시작했다는,그리고 그 사건의 주인공 소년을 '내 마음 속에서 꾹 안기 위해 이 영화를 찍기로 했다'는 내용들이 인상 깊었다. 우리가 전해 들어 안다고 하는 사실의 무책임한 해석과 나열의 수준이 아닌,영화로 그려내려는 이야기와 인물에 대한 사려 깊은 이해가 묻어나는 그의 말들이 절절했다. 영화라는 매체에 대한 애정이 영화에 대한 경외감으로까지 옮겨가는 순간이다. 세상을 향해,사람들을 향해 무언가를 이야기할 때 깊은 성찰이 무엇보다 필요하다는 것을 이런 영화들이 일깨워주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