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 자동차가 처음 선보인 것은 1903년 고종황제가 즉위 40주년을 맞아 들여온 포드자동차였다. 소위 어차(御車)인 셈인데 이듬해 노·일전쟁이 터지면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고 한다. 물론 그 이전에도 선교사들이나 외교관들이 가져온 차가 있었으나 정식 통관절차를 밟은 것은 아니어서 고종의 어차를 자동차 원년으로 친다. 우리나라 최초의 국산 자동차는 1955년에 제조된 시발 자동차다. 시발(始發)은 처음으로 만들어졌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그러나 자동차라고는 하지만 그 속내를 들여다 보면 한심하기까지 했다. 엔진과 변속기 등은 미군이 폐기처분한 군용지프의 것을 불하받았고,철판은 망치로 드럼통을 두들겨 펴서 만든 것이었다. 사정이 이러한데도 시발자동차에 갖는 자긍심은 선전문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넓은 아세아에 있어서 자동차를 제작하는 나라는 우리나라를 넣어 2개국뿐이오니 이 차를 사용함으로써 반만년 문화민의 자부심을 가집시다"라고.또한 외래차에 대해서는 승차하고 있는 사람이 불쾌하고 그 유지비가 걱정스럽다는 등의 심한 거부감을 노골적으로 표현하기도 했다. 시발자동차는 1962년 새나라자동차가 나오면서 그 자리를 내놓았다. 이후 도요타자동차와 포드,피아트와의 기술제휴로 코로나,퍼브리카,코티나,피아트 등이 잇따라 생산됐으나 국산화율을 언급할 형편은 아니었다. 명실상부한 토종자동차는 현대자동차가 1975년 내놓은 '포니'라는 해치백 스타일의 고유모델이다. '꽁지 빠진 닭' 모양의 이 차는 신선하다는 평을 받으면서 다음해부터는 자동차 사상 처음으로 미국 수출길에 올랐다. 자동차 본고장에 진출은 했지만 그 괄시는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시장에서는 싸구려신세였고,소비자들은 가장 형편 없는 차(worst car)를 지칭할 때면 엄지를 아래로 깔면서 포니를 비아냥거리곤 했다. 불모지에서 출발한 국산 자동차가 올해로 생산 50년,고유모델 개발 30년을 맞았다. 이 짧은 기간 국내 자동차산업은 누구도 예상치 못한 세계 6위라는 신화를 창조했다. 앞으로 50년의 자동차역사가 또 다른 신화로 쓰여지길 기대한다. 박영배 논설위원 youngb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