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만기 < 변리사 mgpaik@ip.kimchang.com > 1980년대 말 필자가 정부에서 일할 때 청바지 차림의 빌 게이츠를 만난 적이 있다. 대만을 거쳐 온 그에게 한국과 대만의 정보산업에 대한 느낌을 물었다. 그의 대답은 "한국은 정부와 대기업 주도로 산업이 성장하고 있는 반면 대만은 좀더 자본주의적으로 성장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사실 당시 수많은 중소기업이 주도하는 대만의 정보산업은 메인보드 등의 세계시장을 석권하고 있었다. 그 때 한국 기업은 대만의 중소기업만큼 시장에서 기민성을 보여 주지 못했다. 하지만 한국이 과감한 자본 투자 능력을 바탕으로 디지털 기술의 변화에 대한 적극적인 대응을 통해 이제는 어엿한 정보기술(IT) 강국으로 성장하게 된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향후 10년을 전망해 보면 우리의 IT 산업에 대한 최대 걱정거리는 중국이 될 것 같다. 우선 가격 경쟁은 별개로 치더라도 중국의 산업 기술력의 향상은 눈부시다. 중국은 이미 특허출원 세계 1위 국가가 됐고,구매력을 감안하면 연구개발비 투자 총액이 일본을 앞서기 시작했다. 미국기업연구소(AEI) 분석에 따르면 15년 후에는 중국이 세계적인 기술 최강국이 된다고 한다. 다국적 기업의 연구개발센터는 한국의 180여개보다 훨씬 많은 600여개에 이른다고 하니 연구개발을 뒷받침하는 인력 인프라가 잘 갖춰져 있음에 틀림없다. 미국 대학들의 기초과학 분야 박사 과정은 중국 학생이 주류를 이룬다. 이는 결국 총체적인 국가 과학기술 역량의 강화로 이어지는 것을 의미한다. 또 중국에서 반도체 1개 라인을 건설하는 데 1조원밖에 들지 않아 한국의 2조5000억원에 비하면 엄청난 가격 메리트를 지니고 있다는 점도 우리의 고민거리다. 이런 경쟁 여건 하에서 우리 산업이 살아남는 길은 연구개발의 생산성을 높이는 것이다. 기업은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창조적으로 융합하고,속도 경영을 통해 제품 개발 사이클을 단축해야 한다. 정부는 이에 부합하는 규제 완화 정책의 지속적 추진이 절실하다. 그렇지만 궁극적으로 승부를 가르는 포인트는 한국과 중국 중 어디가 더 창의적인 인재를 길러내는 데 성공할 것인가에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