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고이데스네(すごいですね:대단하네요)." 지난달 17일 오후 서울 양천구 신정동 서울남부지검 조사실. 대검찰청 과학수사과 검사들의 안내로 새로 설치된 조사실을 둘러보던 일본 법무성 소속 쿠마다 아키히데 검사(35)는 연신 감탄사를 쏟아냈다. 한국에 오기 전 두 달간의 자체 연수를 통해 한국 검찰의 변화상을 '예습'하고 왔지만 수사검사와 피의자의 일거수일투족이 그대로 담긴 CD가 즉석에서 제작되자 믿을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서울 남부지검에는 피의자를 조사하는 전 과정을 언제든지 확인할 수 있도록 국내 처음으로 최첨단 디지털 장비를 갖춘 녹음녹화실이 설치돼 있다. 최근 대법원이 검찰의 피의자 신문조서에 대해 '증거능력을 인정할 수 없다'고 판결을 내림에 따라 강압수사 시비를 차단하고 유죄 입증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올해 초 시범 도입됐다. 선진 수사시스템,정치적 중립,강력한 수사력 등에서 세계 최고 수준임을 자부해 온 일본 검찰이 한국 배우기에 나서고 있다. 지난해 10월 일본 검사가 나흘간의 일정 동안 한국 검찰의 변화상을 둘러보고 돌아간 데 이어 지난달 일본 법무성은 3개월이라는 비교적 긴 기간을 처음으로 할애,쿠마다 검사를 한국에 공식 파견했다. 8년차 엘리트 검사인 쿠마다의 임무는 한국의 형사사법개혁 내용을 파악,벤치마킹할 사례를 찾아내는 것. 대검의 한 검사는 "일본에서도 수사절차의 가시화(눈으로 볼 수 있게 하는 방식)가 최대 이슈"라며 "진술자에 대한 야쿠자의 보복 가능성 때문에 도입을 망설이고 있는 일본보다 한국이 앞선 데 대해 쿠마다 검사는 놀라움을 표시했다"고 전했다. 그동안 한국 검찰을 한 수 아래로 보던 일본 검찰의 시각 변화는 지난해부터 본격화됐다는 게 법조계 안팎의 분석. 특히 작년 11월 일본 도쿄변호사회가 한국 검찰을 방문한 뒤 '사법개혁과 관련한 한국 검찰의 강력한 추진력을 배워야 한다'며 일본 검찰의 자성을 촉구한 사건이 한국 검찰 배우기의 직접적인 계기가 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 때문에 최근 한.일 간 외교채널에 형성된 '한류'(寒流)와는 달리 '검찰의 한류(韓流)는 진행형'이라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한국 검찰에 대해 벤치마킹에 나선 곳은 일본뿐만이 아니다. 태국 등 동남아,미국 및 유럽,중국 등도 한국 검찰과의 교류를 잇따라 요청하고 있다. 올해 초 태국은 42명의 검사로 구성된 검찰단을 한국으로 보내 수사시스템을 배워갔다. 중국 베트남 우즈베키스탄 등의 검사들은 지난해 한국에서 연수과정을 받고 돌아갔다. 오는 9월엔 스비야토슬라프 우크라이나 검찰총장이 방한,반부패 수사 협력방안을 논의할 예정이다. 최근 들어 미국과 유럽 등 선진국들도 한국 검찰과의 교류를 희망한다는 내용의 메시지를 보내오고 있다. 대검찰청 곽규택 검찰연구관은 "최근 외국 검사들의 방한 러시는 한국 검찰의 대선자금 수사 성과와 사법개혁 추진 노력을 연구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며 "우리나라의 개혁성과가 좀 더 뚜렷해질 경우 이 같은 국제교류는 더 확대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이관우 기자 leebro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