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우리 경제 동맥경화 증세 심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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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창현 < 명지대 교수 ·무역학 >
TV에서 스트레스를 주제로 한 프로그램을 보다가 스트레스의 무서움을 실감한 적이 있다.
제작진은 한 여성 신인 탤런트의 눈을 가린 채 강의실 같은 장소에 혼자 세워놓은 뒤 보기만 해도 징그러운 비단구렁이 한 마리를 풀어놨다.
장내 마이크를 통해 눈가리개를 풀라는 지시에 따라 주위를 둘러본 이 여성 탤런트는 그만 패닉 상태에 빠져 버렸다.
울부짖다시피하는 이 여성을 데리고 나온 제작진은 즉시 혈액 샘플을 채취하였다.
다음 장면에서는 이 여성 탤런트가 충격을 받기 직전 미리 채취해 놓은 혈액 샘플과 충격받은 뒤의 혈액을 비교 분석하는 설명이 뒤따랐다.
놀랍게도 혈액의 성분은 잠깐 사이에도 상당히 달라져 있었다.
충격 이후 혈액에서는 혈소판과 혈당량이 눈에 띄게 증가했다.
제작진은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옛날 인간이 동물과 다름없었던 시대 인간은 낯선 상대를 만나면 일단 긴장하면서 스트레스를 받는다.
그런데 몸이 이를 알고 미리 대비한다는 것이다.
피를 흘릴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혈액이 빨리 응고되도록 혈소판의 수를 미리 늘려 놓고, 더욱 힘을 내 싸움을 잘할 수 있도록 혈당량도 늘린다.
그러나 이제 인체 내에서 이러한 생존본능으로 인해 늘어난 혈소판은 활성 산소나 콜레스테롤과 함께 혈관벽에 붙어 쌓이면서 동맥경화를 일으키는 주범이 되고 늘어난 혈당은 별로 쓰이지도 못한 채 지방으로 변해 쌓이면서 비만의 원인이 된다.
최근 한국 경제의 모습을 보면 걱정이 앞선다.
상당 기간 정신적 스트레스가 지속되면서 물리적 육체적 충격으로 이어지고 이로 인해 동맥경화와 함께 무기력증이 퍼지고 있다는 느낌이다.
기대가 컸던 1분기 성장률이 2.7%로 3%에 못 미치는 것이 최근 확인되었고 뒤이어 부총리는 연간 5% 성장률을 포기하면서 일본식 장기 불황을 경고하고 나섰다.
새겨 들어야 할 얘기이지만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최근 동맥경화 현상이 뚜렷한 부문은 부동산이다.
강남 집값 때려잡기를 목표로 한 각종 조치들이 거래 자체를 위축시키면서 타 지역 부동산의 거래 위축과 가격 하락을 야기하고 있다.
정상적인 거래마저 위축되면서 자금 흐름까지 왜곡되고 있다.
게다가 균형발전이라는 목표 아래 추진되는 정책들이 전국의 땅값을 들썩이게 만들면서 지가 상승을 부르고 있다.
인체로 따지자면 혈압마저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그뿐인가? 기업 투자나 민간 소비도 영 제 궤도에 오르지 못한 채 헤매고 있는 상황에서 12월 말 결산법인의 주총을 즈음한 지난 3,4월 두 달 동안 외국으로 빠져나간 배당금만 약 4조원에 달했다.
이 때문에 지난 4월의 경상수지는 2년 만에 처음으로 약 9억달러의 적자를 기록하였다.
국내에 유보되고 투자되었더라면 좋았을 기업 이윤의 상당 부분이 외국인 주주에 대한 배당을 통해 외국으로 빠져나간 것이다.
혈액의 양이 줄어들고 있는 것이다.
커다란 양동이에 물을 담아 나르다 보면 물이 뚝뚝 떨어진다.
양동이를 더 크게 만들고 물을 자주 길어 나르게 할수록 그 과정에서 떨어지는 물의 양도 많아진다.
이처럼 기업과 개인을 포함하여 가진 자들을 안심시키고 이들이 열심히 소비하고 투자하도록 유인 체계를 제공하는 것이 자본주의에서는 중요하다.
이것이 바로 '트리클-다운 효과(trickle-down effect)'이다.
이들에게 충격을 가하면 소비나 투자가 위축되고 이는 경제 전체에 대한 스트레스로 이어지면서 정작 심한 타격과 피해를 받는 것은 경제적 약자들이다.
바로 충격의 전가 효과이다.
'배가 아픈 것'을 치유하는 데 집중하다 보면 '배가 고픈 것'에 소홀해지는 수가 있다.
배고픔의 문제는 유기체의 생존 그 자체와 직결되어 있다.
스트레스에 의한 동맥경화와 무기력증에 시달리는 우리 경제에 새롭고 참신한 처방전이 절실하게 필요한 때이다.
/바른사회를 위한 시민회의 사무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