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경영컨설턴트 톰 피터스가 맥킨지에 근무할 때 쓴 '초우량 기업의 조건'은 20세기를 대표하는 경영서다. 이 책은 일본 산업계의 공습에 쓴맛을 본 뒤 다른 세계의 성공 모델에 목말라 있었던 미국 기업에 희망을 주었다. 그러나 아타리,치즈브로-폰즈,데이터제너럴,플루오르,내셔널세미컨덕터 등 이 책에서 다뤄진 적잖은 초우량 기업들이 이 책이 출간된 지 2년이 채 못돼 망했다. 뿐만 아니다. 톰 피터스가 극찬한 모델 가운데 3분의 2가 책이 나온 지 5년이 지나지 않아 업종별 리더 자리를 내주고 밀려났다. '블루오션 전략'의 창시자인 김위찬,르네 마보안 교수는 이런 문제를 지적하며 전략을 연구할 때 분석 단위는 기업이나 산업이 돼서는 안된다고 주장했다. 대신 '전략적 움직임(strategic move)'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략적 움직임이란 새로운 시장이나 비즈니스를 만들어내는 일련의 경영 활동과 결정을 뜻한다. 어떤 비즈니스를 평가할 때는 그 주체인 기업이나 산업 혹은 인물에 집중하기보다는 그 전략 방향이 옳았느냐 잘못됐느냐 하는 점에 주안점을 둬야 한다는 주장으로 해석된다. 사실 기업의 평균 수명이 30년 혹은 연구자에 따라서 15년에 불과하다는 주장이 있는 만큼 기업이나 경영자의 성패에만 주목한다면 경영은 어쩌면 허망한 것이다. 한번의 실패도 없이 계속 성공하는 기업이나 경영자는 찾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니 기업이나 경영자에 초점을 맞출 경우는 한두 번의 실패 때문에 그 동안의 모든 노력들이 의미 없는 것으로 여겨질 가능성이 높다. 한때 세계 최고의 백화점이었던 시어스는 자신들이 보기에 '저급한' 서비스업체였던 월마트에 휘둘리다 결국 K마트에 최근 인수됐다. 소니가 지금 경영 위기를 겪는다고 세계적으로 '워크맨'을 히트시킨 소니의 과거도 의미 없는 것인가. 디지털 여제(女帝)로 불리던 칼리 피오리나 전 HP(휴렛팩커드) 회장은 실적 부진으로 사실상 해고되지 않았던가. 시어스와 소니는 여전히 연구 대상이고 피오리나는 지금도 관심 인물이다. 성공한 경험은 잘 활용하기 위해서, 실패한 과오는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 살펴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최근 김우중 전 대우 회장의 귀국이 임박하면서 그 공과에 대한 논란이 재연되고 있다. 특히 '세계 경영'이 핫 이슈다. 세계 경영의 정신을 이어받자는 모임이 만들어지는가 하면 사기극에 불과하다는 지적도 여전히 많은 상태다. 김 전 회장의 법률대리인인 석진강 변호사도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를 통해 "김 전 회장은 대우의 '세계 경영'이 사기 취급당하는 것을 억울해한다"는 요지로 말하기도 했다. ▶한경 6월7일자 A1,4면 참조 사실 대우의 세계 경영은 대우가 망하지만 않았다면 여전히 연구 대상일 것이다. 이미 하버드대학에서는 경영 성공 케이스 스터디로 대우의 사례를 두 차례 다뤘었다. 또 1990년대 중반 국내 유명 경영학 교수들이 모여 '세계 경영'을 칭송한 '세계가 보인다,미래가 보인다'라는 책을 내기도 했었다. 그런 것들이 모두 엉터리였다는 결과가 나와도 좋다. 최소한 그런 논의 자체는 열려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실패학적인 차원에서 접근하는 시각도 필요하다는 얘기다. 잘했다면 무엇을 잘했고 어떻게 계승돼야 하는지,또는 반대로 크게 잘못했다면 무엇 때문이었는지를 하나하나 따져가며 '전략적 움직임' 그 자체를 평가하는 작업이 있어야 한다. 한때 대학생들이 가장 닮고 싶어하던 경영자가 아무 것도 참조할 것 없는 범죄자로만 기억될 것 같아 하는 소리다. 한경 가치혁신연구소장 yskw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