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외국자본에 의한 적대적 인수합병(M&A)을 규제하는 내용의 회사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는 데 대해 미국과 유럽 기업들이 본격적으로 반발하고 나섰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최근 미국과 유럽의 투자은행 및 로펌들이 재일 미국상공회의소와 유럽비즈니스공동체를 내세워 회사법을 개정하면 일본에서 철수하는 것은 물론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할 것이라며 일본 법무부에 강도 높게 경고했다고 8일 보도했다.


이들은 특히 일본이 회사법 개정안에서 일본에 법인을 설립하지 않고 연락 사무소만 둔 외국기업의 활동을 '불법'으로 규정한 것과 관련,법인 설립에 최대 수억유로의 비용이 들어간다며 반발하고 있다.


일본 정부가 추진 중인 회사법 개정안은 △외국자본에 의한 적대적 M&A 방지를 위한 대응책 도입 △'불순한 의도'를 가진 집단소송 제한 등을 골자로 하고 있다. 이 개정안은 지난달 17일 일본 중의원(하원)을 통과,올 가을 임시국회에서 처리될 예정이어서 결과가 주목된다.


◆미국·유럽 투자은행들의 반발


일본 회사법 개정안 중 특히 외국 투자은행들의 반발을 사고 있는 부분은 제6장 479조에 명시한 '준외국기업 불법화'에 관한 규정이다.


지금까지 외국 펀드와 은행들은 일본 금융청의 묵인 아래 법인 없이 현지 기업에 대한 투자 등을 해왔으나,추진 중인 회사법 개정안에 따르면 앞으로는 법인을 설립하지 않으면 모든 기업 활동이 불법화된다.


이는 특히 정식 영업망 없이 막대한 자금력을 이용해 대형 M&A를 시도하는 외국 펀드들을 타깃으로 한 것으로 분석된다.


외국 자본에 의한 적대적 M&A를 원천봉쇄하는 것은 물론 기업을 인수하지 않더라도 이들이 대주주가 돼 일본기업을 좌지우지하는 것을 막겠다는 취지다.


이에 대해 파이낸셜타임스는 유럽 투자은행 관계자의 말을 인용,"일본에 법인을 세우려면 최소 수천만유로에서 최대 수억유로의 추가 비용이 들어간다"며 "이는 외국 자본의 대일본 투자 의욕을 감퇴시켜 일본 내 외국인 직접투자 감소로 이어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기업 보호 나선 일본 정부


일본 회사법 개정안은 기업의 경영권 보호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개정안에 따르면 일본 기업을 적대적으로 M&A 하려는 세력은 공개매수에 들어가기 전에 해당 기업 이사회에 투자 의도와 향후 계획을 담은 서한을 제출해야 한다. 또 '주주들이 부정하게 이익을 도모하기 위해 기업에 손해를 끼치려는'집단 소송도 원천 봉쇄된다.


일본 정치권도 기업 지키기에 가세하는 분위기다.


내년부터 도입할 예정이었던 'M&A 촉진안' 시행을 2007년 이후로 연기했다. M&A 촉진안은 외국기업 등이 일본 기업을 인수할 때 현금이 없으면 인수합병으로 탄생하는 존속 법인의 주식으로 대금을 지불할 수 있게 한 것으로 당초 일본 정부가 미국의 압력에 굴복해 만들었던 법안이라고 일본 언론들은 지적하고 있다.


◆적대적 M&A에 불안한 일본 기업


일본 경제 주간지 닛케이비즈니스(6월6일자)가 지난달 일본 269개사를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적대적 M&A의 위협을 느끼고 있다'고 답한 일본 기업은 69%에 달한다.


올해 초 일본방송에 대해 적대적 M&A를 시도했던 라이브도어가 미국 투자은행 리먼브러더스의 자금을 끌어다 쓴 사실이 알려지면서 일본 기업이 외국 자본의 M&A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다는 위기 의식이 확산된 결과로 풀이된다.


이에 따라 일본 기업 중 74%가 적대적 M&A에 대한 대응책을 마련한 것으로 나타났다. 구체적으로는 시가총액을 확대하기 위해 실적 향상에 힘쓰고 있다는 답변(71.0%)이 가장 많았다. 이어 신주인수권을 부여하는 포이즌 필(독약조항) 도입(12.3%),이사 시차임기제 도입(11.2%) 등 적극적인 대응책을 마련한 기업도 상당수에 달하고 있다.


정지영 기자 co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