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집단 파워를 끌어안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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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잠금장치 제조업체인 미국 크립토나이트는 지난해 황당한 경험을 했다. 한 네티즌이 자신의 블로그에 '볼펜으로도 크립토나이트 자물쇠를 딸 수 있다'는 내용의 비디오 파일을 올려놓았던 것이 인터넷을 타고 삽시간에 퍼지는 바람에 소비자들에게 엄청난 항의를 받았다.
이 회사는 결국 해당 제품을 교환해 주는 데 1000만달러(100억원)를 지출해야 했다.
인터넷이 기업 환경에 혁명을 일으키고 있다. 초기에는 인터넷이 주로 e메일 교환과 검색에 쓰였지만,지금은 소비자들이 네티즌으로 진화해 수시로 뭉치고 흩어지면서 '집단 파워'를 형성하는 창구로 변해 기업을 쥐고 흔들기도 한다.
하지만 미국 주간지 비즈니스위크는 최신호(20일자)에서'인터넷의 집단 파워'가 가져온 이 같은 변화를 기업이 제대로 알고 활용하면 오히려 비용과 리스크를 크게 낮출 수 있는 것은 물론 새로운 시장을 만들 수 있다고 보도했다.
◆네티즌으로 진화한 소비자
인터넷은 군중에게 정보력,조직력,기동성을 부여해 '네티즌'이라는 똑똑한 대중 집단으로 진화시켰다. 현재 전세계 네티즌은 10억명. 이들은 구글 e베이 같은 유명 사이트를 중심으로 수천만명 이상 단위로 군집을 이루며 기업의 운명을 좌지우지한다.
인터넷 무료 전화 사용자들은 100년간 우량기업이었던 AT&T와 MCI 같은 장거리전화 회사들을 존폐 위기로 내몰고 있다. 유럽과 미국에서 통용되는 인터넷 전화 소프트웨어 스카입의 회원은 현재 4100만명에 달한다. 지금도 매일 15만명씩 늘어난다. 종이 백과사전 출판사들은 1만3000명의 네티즌이 만들고 매월 500만명이 열람하는 온라인 백과사전 '위키피디아' 때문에 문을 닫을 위기에 처해 있다. 1999년 탄생한 블로그는 6년 만에 5000만개를 돌파해 미디어 산업 지도를 바꿔놓고 있다.
◆새로운 시장 창출
이 같은 인터넷 집단 파워는 완전히 새로운 개념의 시장도 창출하고 있다. 경매사이트 e베이에서는 현재 6100만명의 회원이 매주 수백만건의 상품을 스스로 사고 판다. e베이는 이 엄청난 회원수를 발판으로 수수료 등으로 한해 32억달러의 매출을 올린다. 구인 구직 사이트 링크드인(linkedin)에는 200만개가 넘는 이력서가 돌아다닌다.
이 사이트는 오라클이 피플소프트를 인수하기 직전 몇 주 동안 피플소프트 직원 5500명이 한꺼번에 회원으로 가입했을 정도로 엄청난 인지도를 자랑하고 있다. 링크드인이 한 일은 인터넷 사이트를 열어 구인자와 구직자가 '알아서' 만날 수 있도록 한 것뿐이지만 지금은 미국 유력 리크루팅 업체로 부상하고 있다.
◆위기를 기회로
e베이나 링크드인 같이 직접 인터넷 사업에 뛰어들지 않고도 기업이 인터넷 집단 파워를 활용할 수 있는 길은 얼마든지 있다.
P&G,듀폰,보잉 같은 미국 30개 대기업은 자사 연구개발(R&D) 인력이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를 제약회사 릴리가 만든 가상 R&D센터인 이노센티브에 의뢰한다.
이 인터넷 사이트에 회원으로 가입한 173개국 8만3000명의 과학자들은 대기업이 게시판에 올리는 프로젝트를 열람하고 해결책을 제시해 준다. P&G는 지금까지 20여건의 프로젝트를 발주해 이 중 3분의 1에 대한 해결책을 얻었다.
과학자들이 받는 사례비는 건당 5000달러다. 린든랩이라는 게임회사는 온라인 게임 '세컨드 라이프'의 버전 업데이트를 2만5000명의 온라인 회원들에게 맡기고 있다. 이 게임은 오픈소스 소프트웨어를 기반으로 만들어져 게이머들은 자기가 원하는 아이템이나 스토리를 그때그때 추가한다. 린든랩측은 "1000명의 게임 개발 인력을 투입해야 할 수 있는 프로젝트를 소비자들이 각자 알아서 맡아 처리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정지영 기자 co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