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대통령들의 휘호가 최근 미술품 경매의 '단골 메뉴'로 등장했다. 경매라는 공개된 장소에서 내놓는 사람과 사겠다는 사람이 점차 늘고 있는 것은 역대 대통령의 글씨와 서간이 미술 소장품으로 자리잡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대통령의 휘호로는 해위 윤보선 전대통령의 글씨가 2001년초 경매에 처음 나왔지만 본격적인 바람을 불러일으킨 것은 박정희 전대통령의 글씨다.박 전대통령의 글씨는 2002년께부터 가격이 뛰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우남 이승만,윤보선,김대중,김영삼 전 대통령의 글씨가 경매에 고정적으로 출품되도록 '바람몰이' 역할을 톡톡히 했다. 2001년까지 대통령 휘호 중에는 우남의 글씨가 가격이 가장 높았다. 워낙 귀한 데다 예술성도 있어 현판 사이즈 크기의 가격은 보통 1000만원을 넘었다. 나머지 대통령들의 글씨는 보통 200만원에서 300만원,좋은 작품이라야 500만원을 넘지 않았다. 상황은 2002년 말부터 바뀌기 시작했다. 그해 12월 경매에 나온 '경제개발의 내외자 뒷받침에 힘쓰자'라는 박 전 대통령의 글씨는 추정가가 600만원에서 1000만원이었다. 하지만 구매 희망자들 간의 경쟁이 치열해 낙찰가는 1800만원까지 치솟았다. 그 이후 박 전 대통령의 글씨는 고공 행진을 거듭하다 지난해 4월 경매에 나온 '개척과 전진'은 대통령 글씨 중 최고가인 6300만원에 낙찰됐다. 3~4년 사이에 값이 무려 10배 이상 뛴 것이다. 이제는 예정가도 5000만원 수준으로 상향 조정됐다. 최근에는 박 전 대통령의 가족사진과 편지까지 경매에 등장했다. 박 전 대통령의 휘호는 그의 정치적 신념이나 개인 성격이 잘 드러난 작품일수록 높은 가격에 팔린다. DJ와 YS,그리고 해위의 휘호는 가격이 오르지는 않지만 꾸준히 출품되고 낙찰률도 비교적 높은 편이다. 예술적 가치로 보면 우남의 글씨가 가장 앞선다. 황해도 태생인 우남은 어렸을 적 서당에서 서예를 철저하게 배웠다. 당나라 때의 대서예가였던 안진경의 '행서(行書)'를 연구했다고 한다. 우남은 자유당 때 지방 선비와 시를 주고 받을 정도로 전문가 수준이었다. 이에 반해 박 전 대통령의 글씨는 예술성보다는 개성이 뚜렷한 게 특징이다. 그 누구도 흉내내지 못할 정도로 날렵하면서도 박력 있다는 평을 얻고 있다. 윤보선 전 대통령의 글씨는 필법을 철저히 따르는 '신사글씨'로 그의 정치적인 성향과 딱 맞아떨어진다고 한다. DJ와 YS의 붓글씨는 서예 애호가 수준이다. 대통령의 휘호는 예술성보다 국내 정치적 상황에 따라 가격이 변하는 것 같다. 박 전 대통령의 글씨 가격이 뛰기 시작한 2002년 말부터 2003년 상반기는 노무현 대통령이 대선에서 승리해 '참여정부'가 막 출범하던 시기와 맞물린다. 경매에 나온 박 전 대통령의 휘호를 사는 구매자 중에 영남지역 미술 애호가들이 많다는 사실도 재미있다. 국내 정치 경제 상황이 불안해지면서 요즘 서점가에 박 전 대통령을 재조명하는 책들이 쏟아져 나오는 등 사회 전반적으로 박 전 대통령에 대한 향수가 일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미술시장에서는 그의 글씨를 구매하는 바람이 2~3년 전부터 시작돼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sk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