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풀벌레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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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나올 5000원권 뒷면에 신사임당의 '초충도(草蟲圖)'를 싣는다고 한다. '초충도'는 다름아닌 풀벌레 그림이다. 문화재의 이름은 알고 보면 재료와 형태를 모두 드러낸다. '청화백자용문대호(靑華白瓷龍紋大壺)'는 푸른색 용 무늬가 있는 큰 백자 항아리를 말한다. 실물이 없어도 형태를 짐작하게 돼 있는 셈이다.
그러나 한자로만 쓰여 있으면 무슨 뜻인지 알기는커녕 읽기도 어렵다. 간송미술관에선 이런 점을 감안, 몇년 전부터 전시 때면 작품의 한자 이름 옆에 우리말로 풀어쓴 이름을 달아왔다. '주유관폭(舟游觀瀑)'은 '배 타고 폭포 구경하다', '계산모정(溪山茅亭)'은 '산 속 시냇가의 초가', '기려섭천(騎驢涉川)'은 '나귀 타고 개울을 건너다' 식이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하거니와 무슨 뜻인지 알고 감상하면 한결 이해하기 쉽고 관람 자체가 즐거워진다. 뿐만 아니라 작품 속에 담긴 옛사람들의 생각과 숨결도 느낄 수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이하 국박)이 용산으로의 이전 개관을 앞두고 한자식 문화재 이름을 우리말화하기로 했다는 소식이 반가운 건 그래서이다.
방법은 여러 가지로 강구된 모양이다. '몽유도원도(夢遊桃源圖)'처럼 널리 알려진 건 그대로 쓰되 '꿈 속에 여행한 복사골 마을'이란 설명을 붙여주고, '청동은입사포류수금문정병(靑銅銀入絲蒲柳水禽文淨甁)'은 물가풍경무늬정병, '죽제고비(竹製考備)'는 편지꽂이 등으로 바꿔 붙인다는 게 그것이다.
초·중·고교생은 물론 20∼30대도 한자를 거의 모르는 게 현실이다. 따라서 국박의 시도는 충분히 평가할 만하다. 박물관은 단순한 유물 전시장이나 외국인들이 구경삼아 한번쯤 둘러보고 가는 관광지가 아니라 이 땅 사람들이 옛것을 통해 오늘을 살아갈 지식과 지혜를 배우는(온고지신·溫故知新) 산 교육의 장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든 번역은 되도록 정확한 게 좋고 설명은 친절할수록 좋다. 몽땅 풀어쓰자니 너무 길다 싶었는지 모르지만 기왕이면 '죽제고비'는 그냥 편지꽂이가 아니라 대나무 편지꽂이라고 해주는 게 낫다. 화(花)는 꽃이요, 훼(卉)는 풀이며, 영(翎)은 새의 깃털, 모(毛)는 짐승의 터럭인 걸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박성희 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