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장기불황 이미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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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만수 < 디지털경제硏ㆍ이사장 >
1997년 10월 외환위기가 닥치기 직전 미국 컨설팅회사 부즈 앨런 해밀튼(Booz Allen & Hamilton)은 고비용ㆍ저효율구조에 봉착한 한국 경제에 대해 비용의 중국과 효율의 일본의 협공으로 호두깎이(nutcracker)에 낀 호두같이 변하지 않으면 깨질 수밖에 없는 운명이라고 진단했다.
1996년 '한강의 기적'은 이미 끝났다고 단언하고 신경제 패러다임으로의 혁신을 이루어내지 못하면 한국경제는 쇠퇴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다음달 우리는 외환위기를 맞았고 그 후 동북아중심국가 건설 등 놀랄 만한 연구와 제안이 있었지만 보고서에서 지적한 대로 '행동은 없고 말만 무성'(words without deeds)했다는 것이 자화상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나는 2001년 이 칼럼에서 우리 경제는 경기순환뿐 아니라 구조적으로도 어려운 국면에 봉착했다고 지적했고,지난해에는 한 세대 만에 선진국 문턱까지 '압축성장'을 이룬 우리 앞에 '압축침체'의 유령이 어른거린다고 쓴 적이 있다.
하고 싶지 않고,틀리고 싶은 말이지만 냉철하게 생각하면 지금 우리 경제는 1997년 환란 이후 올해 8년째로 장기불황의 늪에 빠져있다는 감을 지울 수 없다.
환란 이후 등장한 경기양극화니,고용 없는 성장이니 하는 말은 장기불황에 대한 착시현상이거나 희망 섞인 왜곡이라 생각된다.
경제성장률을 보아도,저축과 투자를 보아도,소비지출과 가계부채를 보아도 장기불황의 징후는 1997년 이후 해마다 짙어져 왔다.
반도체와 자동차 등 일부 품목의 수출증가와 465조원의 가계부채 거품에다 정부의 희망과 의도가 섞여 흐려져 왔을 뿐이다.
경제성장률은 1995년 8.9%를 정점으로 1997년 외환위기 이후에는 사실상 5%대를 넘어본 적이 없고 잠재성장률도 이미 3%대로 떨어졌다.
1998년부터 2002년까지 국민의 정부 5년간 평균 4.3% 성장에 그쳤고,2003년부터 2004년까지 참여정부 2년은 평균 3.8%에 그쳤다.
1999년부터 2004년까지 카드대출 주택대출 창업자금대출을 중심으로 증가한 280조원의 가계부채 거품을 공제하면 1998년부터 2004년까지 7년간 실질적으로 평균 3%대의 성장이 있었음을 추정할 수 있다.
2002년 대통령 선거를 앞둔 경기부양책의 결과로 3년간 170조원의 가계부채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1997년 203조원이던 총통화(M2)를 2002년에 605조원(추정)까지 5년간 402조원을 풀었고,폭발적으로 증가한 부동자금은 부동산 투기열풍을 몰고 왔고,전국적인 지역개발정책은 기름을 부은 격이었다.
1995년부터 2004년까지 10년간의 장기추세와 3%대로 떨어진 잠재성장률을 감안하면 올해의 성장은 3%대로 떨어질 것을 추정할 수 있고 중국 위안화의 평가절상이나 원유가격의 하락 같은 외생변수가 없으면 내년은 더 떨어질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4%대의 성장에 접어들고 외환위기가 일어난 1997년부터 올해로 8년째 이미 장기불황에 들어섰다고 추정할 수 있다.
금리정책은 함정에 빠진지 오래고 추경예산편성 같은 단기부양책도 약효가 별로 없다.
노동시장의 경직성과 정부의 반시장적인 규제가 지속되고 국민에너지의 분열과 북핵문제의 갈등이 지속되는 한 불확실성은 증가될 것이고 투자와 소비의 증가를 지연시켜 장기불황은 10년 이상 지속될 가능성이 있다.
1997년의 외환위기가 국제수지 적자의 누적과 구조조정의 지연이라는 대외적이고 경제 내적인 요인에 의해 일어났다면 1998년 이후의 장기불황은 반시장적인 정책과 리더십의 혼조라는 대내적이고 경제 외적인 요인이 큰 게 아닌가 한다.
이미 닥친 장기불황은 외면한다고 해결될 일도 아니며 구조적인 대책과 함께 불확실성의 제거를 위한 노력이 절실하다.
단기적인 대책으로는 불황의 골만 깊어가고 고통의 기간을 더 길게 할 것이다.
최근 경제부총리가 "현 단계에서 경제시스템의 획기적인 개선을 이루지 못하면 일본과 같은 장기침체의 늪에 빠질 소지도 있다"고 말한 것은 용기 있고 정확한 진단이라 생각된다.
/mskang36@unite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