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새벽 1시26분(현지시간) 베트남 하노이공항에서 맞딱뜨린 김우중 전 대우 회장의 모습은 초라함을 넘어 처연하기까지 했다.깊게 패인 주름과 여윈 체구,해외생활의 온갖 풍상이 녹아있는 듯한 공허한 표정에는 한때 '킴기즈칸'으로 불리며 지구촌 시장 구석구석을 누비던 기업가의 왕성한 패기를 찾아볼 수 없었다. 대우는 해방을 전후로 그룹의 모태를 일군 삼성 현대 LG 등과 달리 1970년대 정부가 주도한 경제개발 프로그램 속에서 수출전문 기업으로 성장했다.김 회장은 창업자였지만 동시에 기업의 국제적 도약을 일군 탁월한 전문경영인이기도 했다. 여느 창업주들이 그러했듯이 김 회장 역시 위험을 감수하는 적극적인 경영전략과 저돌적인 추진력을 앞세워 한 시대를 풍미했다.당대에 아무도 거들떠 보지 않던 공기업들을 과감하게 인수하고 신흥시장을 텃밭으로 만들기 위해 동유럽을 비롯한 제 3세계 국가들을 향해 맹렬하게 진격했다.김 회장이 계속 성공을 거두었더라면 평가가 달라졌겠지만 1990년대 한국 경제에 천형처럼 찾아온 외환위기에 대우는 침몰하고 말았다.동시에 김 회장의 경영스타일에 대한 비판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1인 지배와 독주,무리한 확장,리스크를 고려하지 않는 '자전거 경영'등은 국내 재벌의 전형적인 병폐를 보여주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 경제에 제2,제3의 '김우중'이 나오지 않고 있는 것이 경제회복을 가로막는 걸림돌이라는 주장에도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최고경영자(CEO)들이 리스크를 감수하기 보다는 피하려 들고 신흥시장에의 과감한 투자보다는 안전한 시장에서 목표 수익률을 유지하는 쪽으로 움직인다면 경제의 활력을 도모할 수 없다는 것이다.사실 외환위기 이후 득세한 전문경영인들은 대부분 재무관리형 CEO들이다.이들의 입장에서 보면 '김 회장식 경영스타일'은 절대로 수용할 수 없다.김 회장 주변 인사들이 향후 국내 경제에 부정적인 전망들을 내놓는 이유 중에 하나도 기업들의 의사결정 구조가 지나치게 보수적으로 변했다는 것이다. 물론 실패한 기업가가 이런 걱정을 한다는 것이 난센스이긴 하지만 구조적인 저성장기에 접어든 한국경제의 현 상황이 그만큼 심각하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조일훈 기자 ji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