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온 김우중] 취재진ㆍ시위대ㆍ대우맨 뒤엉켜…떠밀리듯 입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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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중 전 대우 회장은 역시 거물이었다.
김 회장이 귀국을 결행한 지난 13일 베트남 현지에 30여명의 국내 취재진이 몰려들었고 김 회장이 탑승한 항공기에도 25명의 기자들이 동행했다.
14일 아침 인천공항 역시 수백명의 취재진과 시민단체,측근 인사 등이 몰려나와 북새통을 이뤘다.
김 회장을 태운 항공기가 14일 오전 5시26분 인천공항에 도착하기까지 김 회장이 보낸 하루는 그 어느 때보다도 고단하고 긴장된 시간이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김 회장이 베트남을 떠나던 날,한국경제신문이 찾아낸 하노이 저택 역시 하루 종일 무거운 적막감에 휩싸여 있었다. 김 회장 측은 취재진이 처음 저택에 도착한 13일 오전 9시(이하 현지 시간)부터 출국을 위해 집을 나서던 오후 10시40분까지 두 곳의 철제 대문을 굳게 잠근 채 단 한 번도 외부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으며 바깥에서 만남을 요청하는 취재진의 목소리에도 일절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나중에 귀국비행기에서 기자와 만난 김 회장의 법률자문 조준형 변호사는 "집 밖에 취재진이 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검찰 조사를 앞두고 인터뷰를 하는 것이 너무 부담스러워 어쩔 수 없었다"고 양해를 구했다.
# 하노이에서 발견한 김회장
한국경제신문이 하노이 저택의 소재를 파악하게 된 것은 하노이 중심부에 자리한 멜리아호텔에 김&장법률사무소의 조준형 변호사와 의료진인 아주대병원의 소의영·신준한 교수가 투숙했다는 사실을 지난 12일 확인한 데서 시작됐다. 취재진은 하노이 시내의 모든 특급호텔을 찾아다니며 관련 인사들의 투숙 여부를 확인하고 있던 터였다.
13일 오전 6시30분께 멜리아호텔에 도착한 취재진은 잠시 후 이들이 김 회장의 비서와 만나 아침식사를 같이 하는 모습을 목격했다. 식사를 마친 이들은 호텔을 빠져나와 김 회장이 보낸 매그너스 차량에 올라타 모처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취재진도 미리 대기시켜 놓은 차량을 통해 이들을 쫓았다. '29-NN 691-21'이라는 번호판을 부착한 매그너스는 싱가포르 등록 차량으로 확인됐다. 이는 싱가포르의 노블사 소속 차량으로 이 회사는 베트남에서 골프장 사업 등을 하며 김 회장에게 자문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도심에서 하노이공항 방향으로 30분쯤 달리던 매그너스는 오른쪽에 탕롱인터내셔설 빌리지가 나타나자 핸들을 꺾었다. 취재진은 주택가 깊숙이 따라 들어가면서 그동안 하노이 교민들에게조차도 완전히 베일에 가려져 있던 김 회장의 거처를 직접 확인할 수 있었다.
# 베트남에서의 마지막 만찬
저택은 한적하면서도 사방이 트인 곳에 위치하고 있었다. 섭씨 40도에 육박하는 무더위 때문인지 주위를 오가는 사람들도 별로 없었다. 취재진은 몇 차례 벨을 누르며 진입을 시도했다. 하지만 그 때마다 달려나온 현지 관리인들에 의해 철저하게 차단당했다. "김 회장님,한국에서 기자들이 왔습니다"라고 10여분 고함을 쳐도 마찬가지였다. 나중에는 공안들까지 순찰차를 몰고 나타나 취재진을 압박했다.
저택이 갑자기 활기를 띠기 시작한 것은 오후 7시께. 베트남에서의 '마지막 만찬'이 시작되고 있었다. 주방 창문 틈으로 여성 요리사들의 모습이 보이고 사람들의 목소리도 간간이 흘러나왔다. 잠시 2층에 모습을 드러낸 김 회장이 짐정리를 하는 모습도 보였다. 취재진은 더 이상 밤이 깊어지기 전에 다시 한 번 진입을 시도하기로 하고 초인종을 눌렀다. 이번에는 관리인들이 더욱 화가난 표정으로 나와 "경찰을 부르겠다"고 노골적으로 협박했다. 2층 불이 꺼진 것도 거의 동시였다. 김 회장 측은 외부의 누구와도 접촉하지 않기로 작정한 것 같았다.
# 기내에선 물만 마셔
결국 김 회장은 베트남 당국의 특별 경호를 받으며 공항 활주로로 직접 차를 몰고 나왔을 때에야 모습을 드러냈다. 브리지가 아니고 트랩으로 항공기에 올라선 김 회장은 몰려든 취재진으로 인해 안경이 벗겨질 정도로 극심한 몸싸움에 시달려야 했다. 김 회장의 얼굴에는 곤혹스럽고 착잡한 기색이 역력했다. 귀국소감을 묻는 질문에는 미간에 주름을 잔뜩 잡은 채 고개를 숙였다. 20여분에 이른 취재진과 수행원들의 실랑이 끝에 이륙 후 간단한 기내 인터뷰를 하기로 양측이 합의한 뒤에야 항공기 출입문이 닫혔다.
김 회장은 비행 중 식사는 거의 하지 않은 채 생수만 계속 마셨으며 잠을 이루지 못했다는 후문이다. 가끔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겼으며 온갖 상념들을 떨쳐내기 위해 애쓰는 모습이었다.
# 공항에서 검찰청사까지
14일 오전 5시40분께 김 회장이 인천공항 입국장에 모습을 드러내자 현장에 모여있던 시민단체 관계자와 취재진,전 대우직원 등 수백명이 한꺼번에 몰리면서 경찰과 심한 몸싸움을 벌여 입국장 주변은 순간 아수라장이 됐다. 김 회장은 입국장에 모습을 나타낸 뒤 입국 소감을 말하려 했으나 시민단체 관계자들이 물병을 던지며 구호를 외치는 바람에 포기하고 바로 수사관들에 둘러싸여 문 밖으로 향했다.
김 회장이 탄 순찰차는 쉽게 현장을 빠져나가지 못한 가운데 시민단체 회원과 취재진이 몰려들면서 급기야 순찰차 뒷 유리가 파손되기까지 했다. 김 회장은 애초 검찰측이 준비한 흰색 누비라에 탈 예정이었으나 취재진들의 치열한 취재경쟁과 시위대의 거센 항의로 경찰 순찰차로 옮겨타야 했다.
이날 일찍부터 공항에 나온 대우자동차 홍보팀 출신 김모씨는 "우리가 모시던 분이었는데 불명예를 안고 돌아오게 돼 안타깝다"며 "약속을 하고 온 것은 아니지만 나처럼 자발적으로 나온 전 직원들이 주변에 꽤 많다"고 말했다. 공항에는 또 옛 대우그룹의 소액 주주와 정리해고된 전 대우차 직원 등 수십명이 피켓과 플래카드를 펼쳐들고 김 회장에 대한 처벌을 요구하며 항의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오전 6시50분께 대검찰청에 도착한 김 회장은 대기 중이던 취재진을 향해 잠시 포토라인에 선 뒤 취재진의 쏟아지는 질문에 "자세한 내용은 검찰에서 밝히겠다. 이번 일을 전적으로 책임지겠다"고 짧게 대답했다.
지병과 오랜 도피생활,야간 비행 탓에 지치고 수척한 표정의 김 회장은 곧장 대검 11층 조사실로 이동해 조사를 받기 시작했다.
하노이(베트남)=조일훈·강은구·류시훈·이관우 기자 ji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