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도국들, 채무국서 채권국 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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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등 개발도상국(이머징마켓)들이 채무국에서 채권국으로 바뀌고 있다. 이들은 선진국을 뛰어넘는 고성장과 유가를 비롯한 원자재 가격의 급등,외환보유액 확충 노력 등으로 채권액이 채무액을 웃도는 부국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15일 신용평가회사인 피치의 자료를 인용,내년이면 이머징마켓 국가들의 대외 채권액이 채무총액을 상회해 순(純)채권국이 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이에 따라 러시아와 아시아 개도국 등 이머징마켓은 국가신용등급이 상향 조정되는 등 경제가 선순환에 들어가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이머징마켓의 늘어나는 외환보유액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이머징마켓은 지난 한 해 동안 외환보유액을 4000억달러나 확대했다. 이 같은 추세는 올 들어서도 이어져 한국 중국 인도 러시아 브라질 말레이시아 등의 중앙은행이 지난 1분기에만 외환보유액을 1000억달러 더 늘렸다고 피치는 전했다.
인도의 경우 1997년 240억달러이던 외환보유액이 작년 말에는 1260억달러로 급증했다.
98년 금융위기를 겪었던 러시아도 외환보유액이 97년 180억달러에서 올해는 1450억달러로 대폭 늘어 외채총액(1100억달러)을 상회했다. 이에 따라 순채권국이 된 러시아는 최근 파리클럽(채권국 모임)에서 빌린 430억달러 채무 중 150억달러를 갚기로 하는 등 강한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또 멕시코(94년) 아시아(97년) 브라질(99년) 아르헨티나(2001년) 등 과거 금융위기를 겪은 나라들도 외환보유액 확대에 적극적이다.
이처럼 이머징마켓들이 채권국 대열에 합류하는 움직임을 보이면서 미국의 경상적자 폭은 확대되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최근 IMF 자료를 인용,"1996년 이후 작년까지 이머징마켓의 경상수지가 총 4240억달러 개선됐다"며 "이는 같은 기간 미국의 경상적자 악화분 5460억달러의 78%에 달한다"고 전했다.
◆펀더멘털 개선이 주요인
이머징마켓의 채권국 전환은 무엇보다 경제 체력이 강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필립 풀 HSBC 이머징마켓 담당 애널리스트는 "러시아와 같은 일부 산유국은 고유가로 외환보유액이 늘어 순채권국으로 전환됐지만 대부분의 이머징마켓들은 펀더멘털의 개선을 통해 자력으로 순채권국이 됐다"고 분석했다.
IMF에 따르면 미국 유럽 일본 등 선진 경제권은 올해 2.6% 성장할 전망인 데 반해 아시아(일본 제외)는 평균 7.4%,러시아는 6.0% 등으로 월등히 높은 성장률을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중남미 국가들 역시 지난해 경제성장률이 10여년 만의 최고치인 5.5%에 달했다. 올해도 4.4% 성장할 것으로 IMF는 내다보고 있다.
잉그리드 이버슨 인사이트인베스트먼트 이사는 "이머징마켓의 펀더멘털 개선으로 국채 발행 규모가 줄어들면서 이머징마켓 채권에 투자한 투자자들이 큰 이익을 얻고 있다"고 전했다.
◆신용등급도 상향조정
이머징마켓의 국가신용등급도 나날이 좋아져 대부분이 투자적격의 신용등급으로 올라선 상태다.
피치는 이머징마켓 국가 중 13개국의 신용등급 전망을 '긍정적'으로 평가했으며 '부정적' 전망을 제시한 나라는 3개국에 불과하다.
지난 1일에는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가 아르헨티나의 신용등급을 'B-'로 6단계나 높였다. FT는 "이머징마켓 국가와 선진국 사이의 신용도 차이도 좁아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머징마켓 국채수익률과 미국 국채수익률 간 금리차는 올 들어 4%포인트 미만으로 좁혀졌다.
FT는 이 같은 이머징마켓의 위상 변화가 미국과 유럽의 재정적자 확대나 장단기 금리차 역전 등을 불러 글로벌 경제의 불균형이 초래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또 개도국간 격차가 확대될 가능성도 있다.
데이빗 릴리 피치 이사는 "미국이 금리인상을 지속할 경우 해외 부채가 많은 브라질이나 터키 헝가리 등 일부 이머징마켓 국가들은 외채 부담이 눈덩이처럼 불어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장규호 기자 daniel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