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의 수사가 대우그룹 자금관리의 중핵이었던 BFC(British Finance Center)의 자금거래 내역에 집중되면서 김우중 전 대우 회장의 진술 내용에 정·관계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총 200억달러로 추산되는 BFC의 자금거래 증빙서류가 트럭 한 대분에 달할 정도로 방대하고 복잡한 데다 당시 자금거래의 세세한 내용을 기억하는 사람들도 거의 없어 현실적으로 김 회장의 진술이 결정적인 단서를 제공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지난 2000년 금융감독원이 BFC를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사용처가 드러나지 않거나 관련 증빙서류가 없는 자금은 7억달러 정도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 금감원은 이 돈의 행방을 찾기 위해 관련 인사들을 모두 접촉했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지난 1998년10월께 BFC의 자금관리를 맡고 있던 L씨가 교통사고로 사망하고 관련 정보가 담긴 디스켓이 사라지면서 자금의 정확한 사용처를 밝히는 데 실패했다. 당시 L씨는 BFC에서 5년째 일하고 있었으며 체이스맨해튼 등 금융기관 관계자들을 데리고 폴란드 FSO 공장을 방문하던 도중에 교통사고를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과연 7억달러 중 얼마나 많은 돈이 비자금으로 조성돼 정·관계로 흘러들어 갔느냐 하는 점이다. BFC는 외환관리법 규제를 피해 자금을 수시로 입출금하던 비선 조직이었기 때문에 비자금을 조성할 개연성은 충분해 보인다. 하지만 대우 측은 이런 추측을 일축한다. 만기가 돌아오는 해외법인 차입금을 상환하기도 벅찬 판에 무슨 돈으로 비자금을 조성했겠느냐는 것이다. 실제 금감원 실사팀도 용처가 확인된 190억달러 상당의 자금 중 비자금이 조성된 흔적은 발견하지 못했다고 발표한 적이 있다. 백기승 전 대우그룹 홍보실장은 "BFC는 세간에 알려진 것처럼 비밀조직이 아니다"라며 "수많은 직원들이 BFC에서 근무하고 있었고 외국계 은행들도 존재를 잘 알고 있었다"고 말했다. 따라서 대우 측이 7억달러의 자금용처 자료를 일부러 폐기한 것이 아니라면 이 돈의 일부가 비자금으로 조성됐을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하지만 비록 BFC의 자금이 아니더라도 김 회장이 다른 방편으로 비자금을 조성하고 관리했을 가능성은 배제할 수 없다는 지적이다. 검찰이 BFC의 자금용처를 추궁하는 과정에서 다른 계좌의 음성적인 거래를 발견하거나 관련 진술을 확보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실제 검찰은 지난 1995년 '노태우 대통령 비자금'수사를 통해 김 회장이 총 240억원을 노 전 대통령에게 전달한 사실을 확인했다. 또 과거 기업과 권력 간 관계에 비춰볼 때 대우를 비롯한 많은 기업들이 정치권에 음성적인 자금을 제공해왔다는 것이 사실이다. 결국 김 회장이 검찰 수사에서 어떤 내용의 진술을 하느냐에 따라 정·관계에 일파만파의 충격을 안겨줄 수도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별도로 자금제공 장부를 만들지 않았다면 순전히 김 회장의 기억에 의존한 진술이 나올 공산도 없지 않다. 조일훈 기자 ji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