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중공업(현중) 노조는 이미 실패한 일본식 노동운동을 답습하고 있습니다." 이 회사의 전직 노조위원장 등 현장 운동가들이 15일 현중 노조의 노사 강령 및 이념 선포식에 대해 "노동조합의 모든 권리를 포기하는 행위"라며 철회를 촉구했다. 또한 "노조가 추구하는 '참여와 협력'은 노조 자주성을 포기한 일본의 노사관계가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들 눈엔 현중 노조가 모델로 삼은 일본 도요타자동차의 노조가 한마디로 '어용(御用)노조'로 비쳐진 듯했다. 도요타는 매년 수조원의 순이익을 올리는데도 노조가 지난 4년간 알아서 임금을 동결하고 있으니 그럴 만도 하다. 현중 노조의 한 간부는 그러나 속내를 들여다보면 노조 설립 목적을 가장 충실히 따르는 '자주 노조'라고 강조했다. 현중 노조도 도요타처럼 노조원들의 최대 관심사인 고용안정을 위해서는 회사가 먼저 건실하게 존재해야 한다는 점을 깨닫고 있다는 설명이다. 물론 이같은 깨달음을 얻기까지 도요타 노사도 인력 구조조정과 이에 따른 총파업 등 수많은 아픔을 겪었다. 1962년 '노사선언'으로 이 깨달음은 구체화됐다. 선언에 들어있는 "기업의 번영과 노동조건의 개선은 '차(車)의 두 바퀴'"라는 강령은 도요타의 헌법으로까지 불린다. 현중 노조도 바로 이같은 노사문화를 구축하기 위해 새 노동운동 이념 및 강령을 선포했다. "우리가 오늘 선진 노사관계를 선언하기까지는 무려 10여년의 세월을 허비해야 했습니다." 탁학수 노조 위원장은 투쟁일변도의 노동운동에 종지부를 찍는 선포식에서 이같은 소회를 피력했다. 그는 "그동안 강성투쟁을 최선으로 여겨온 노동운동은 이제부터 기업과 국가경제까지 생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1990년대 노동운동의 메카라는 오명을 벗고 지역 및 국가경제를 걱정하며 노동운동의 새 이념과 강령을 내놓은 현중 노조가 과연 어용인지 현장 노동운동가들에게 되묻고 싶다. 울산=하인식 사회부 기자 ha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