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위기 극복의 주역이었던 전철환 전 한국은행 총재. 김구 선생의 휘호 '노동신성'을 걸어놓고 좌우명으로 삼으며 총재 취임 때 두 아들에게 "내가 퇴임하는 날까지 단 한 주의 주식도 사거나 팔지 말라"고 엄명을 내렸던 대쪽 학자.


그의 사후 1주기(6월18일)를 맞아 유고집 '한국 경제에 고함'(아라크네)이 나왔다. 그는 1부 '우리가 사는 자본주의 체제'에서 인류 발전의 원동력인 사유재산제와 이윤추구 원리를 계속 키워나가되 자산가들이 사회적 책무를 다해 존경받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2부 '세계 경제전쟁에서 이기는 길'에서는 한국인이 위기에 대한 관리능력이 뛰어나고 기회로 바꾸는 역량도 갖고 있기 때문에 이를 바탕으로 동북아 경제협력에 적극 참여하면서 민족 동질성을 찾는 데 앞장서야 한다고 역설했다. 총재 시절 서민과의 호흡을 중시해 한번도 골프를 치지 않았던 그는 저소득층을 위한 사회안전망 강화와 양극화 현상 극복 등의 과제에 대해서도 조목조목 문제점과 대안을 살폈다.


3부 '역사는 결코 끝나지 않았다'에서는 사회주의 몰락과 자본주의 시장경제 체제의 승리로 대변되는 20세기 역사를 돌아보며 '그러나 현재의 자본주의 체제가 모든 모순을 해결하고 인간의 이성을 실현할 수 있다고 확신할 수는 없다'고 지적했다. 나아가 한계 없는 상상력과 합리적인 논증력을 통해 역사의 지평을 더 넓혀야 할 책무가 우리에게 있다는 것을 일깨워준다.


글로벌 경제강국의 조건과 함께 한국의 미래를 비추는 이정표까지 제시한 진보 경제학자의 철학적 깊이가 느껴지는 책이다. 224쪽,1만2000원.


고두현 기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