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18일 국내 PC업계는 충격에 휩싸였다. 연간 2조원 이상의 매출을 올린 국내 2위 PC업체인 삼보컴퓨터가 법정관리를 신청했기 때문이다. KAIST 연구원 출신의 이용태 회장이 단돈 1000만원으로 설립,굴지의 기업으로 성장시킨 삼보가 무너지는 것을 보는 업계의 충격은 결코 작지 않았다.


중견 PC업체들의 몰락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연초 현대멀티캡이 부도를 냈고 4월에는 대표적 중견업체인 현주컴퓨터가 문을 닫았다. 현재 남아 있는 중견규모의 업체는 주연테크컴퓨터, 대우컴퓨터 등이 고작이다.


삼보나 다른 중견 PC업체들이 끝내 좌초한 이유는 경쟁사들과 피를 흘리며 싸우는 '레드오션'에서 벗어나지 못한 결과라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분석이다. 실제 삼보는 새 시장(블루오션)을 창출하지 못해 중국 대만 업체들의 가격 공세에 휘말렸다. 데스크톱 PC 사업의 경우 100만원짜리 1대를 팔면 마진이 1000원에 불과할 정도로 이익내기가 어려운 구조였다.


경쟁의 붉은 바다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것은 중견 PC업체들뿐만이 아니다.


5년 전만 해도 제2의 도약기를 눈앞에 두고 있다는 평가를 받았던 중견 휴대폰 업체들도 상황은 비슷하다. 텔슨전자가 올 3월 최종 파산했으며,앞서 지난해 11월에는 세원텔레콤이 법정관리에 들어갔다.


해외 기업에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이나 제조자설계생산(ODM) 방식으로 제품을 공급하던 중견 휴대폰 업체들이 중국과의 출혈 경쟁에 시달리다 몰락의 길을 걸은 것이다.


세계 시장을 주도하는 초일류 기업들도 예외가 아니다.


세계 최대 자동차 업체인 제너럴모터스(GM)는 최근 신용등급이 '정크본드(투자 부적격 채권)' 수준으로 떨어졌다.


GM의 퇴조에는 여러 요인이 작용했다. 출혈 경쟁도 그 중 하나다.


2001년 9·11테러 이후 실시한 파격적인 무이자 할부 판매 정책이 대표적이다.


오토데이터에 따르면 GM 고객들은 자동차 한대를 구입할 때 평균 3830달러의 할인 혜택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이 정책은 경쟁업체를 자극해 출혈 경쟁을 촉발했다.


실제 포드는 이틀 만에,다임러크라이슬러는 일주일 만에 뒤따라 무이자 할부 판매에 들어갔다.


일본과 한국 업체들이 생산성을 높여 원가를 줄이고,기술개발로 품질을 높이는 '가치 향상 전략'으로 시장을 파고든 반면 미국 회사들은'경쟁자 죽이기'에 매달렸던 셈이다.


기업들이 이처럼 새 시장 개척보다는 경쟁사 죽이기 경쟁을 벌이는 이유는 여러 가지다. 무엇보다 이전까지의 전략론이 대부분 경쟁에서 이기는 법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경영전략론은 제1,2차 세계대전의 성과를 바탕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적과의 싸움,즉 경쟁을 피할 수 없다는 대전제를 깔고 있다.


둘째는 기업 내외부에서 경영자나 경영 성과를 평가하는 기준을 경쟁사와의 비교에 두고 있다는 점이다. 경쟁사보다 앞서야 하고 더 나은 성과를 내야 하는 만큼 경쟁사들이 하는 모든 활동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셋째는 경쟁사들이 끊임없이 시비를 걸어오기 때문에 싸움을 피하기도 어려운 게 현실이다.


하지만 경쟁 전략만으로는 아무리 성공을 거둬도 장기 성장을 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새로운 경쟁자는 언제든지 다시 나타날 것이고,기존에 경쟁 관계가 아니던 업체들도 언제든지 강력한 경쟁자로 돌변할 수 있다. 업종의 구분이 없어지고 언제 어디서 어떤 형태의 새로운 경쟁자가 나타날지 모르는 시대에는 같은 업종,같은 지역에서의 경쟁만 생각하는 사고로는 낭패를 당할 수밖에 없다.


분명한 것은 경쟁을 잊고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으면 중장기 성장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세계가 블루오션 전략에 주목하는 것도 이 같은 현실 인식의 반영이다.


블루오션 전략의 창시자 김위찬 교수와 르네 마보안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새 비즈니스에 투자한 108개 기업을 20년간 분석한 결과 레드오션 전략에 바탕을 둔 비즈니스가 86%,블루오션 전략에 입각한 비즈니스는 14%에 불과했다.


그러나 총 이익 측면에서 볼 때는14%밖에 안 되는 블루오션 전략 비즈니스가 거둔 이익이 무려 61%에 달한 것으로 나타났다.


경쟁을 계속해 상처뿐인 영광을 얻을 것인가,새로운 시장을 개척해 큰 성공을 거둘 것인가. 블루오션으로 가고 싶다면 먼저 피로 물든 바다,즉 레드오션에서 탈출해야 한다.


송대섭 기자 dss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