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들은 왜 마진이 점점 줄어들어 매력이 떨어지는 레드오션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것일까.


한마디로 답하면 오랜 버릇 때문이다.


스스로가 편안하게 느껴 고칠 이유를 잘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레드오션이 물결치게 되는 과정을 보자. 경영자들에게 가장 유혹적인 것은 바로 지금 눈 앞에 보이는 이익이다.


기업들은 작지만 확실한 이익이 보장되는 기존 제품라인의 확장에 열을 올린다. 경쟁사들을 모방하는 것도 주저하지 않는다.


한정된 시장을 놓고 뒤엉켜 싸우는 동안 기업들은 서로 닮아가기 시작한다.


자연히 소비자들은 이들 기업이 내놓은 제품에 별 차이를 느끼지 못하고,경쟁은 결국 가격으로 옮아간다.


끊임없는 제살깎기 경쟁 속에 기업들은 하나둘 쓰러진다.


더 이상 잘 팔리지도 않고 이익도 점점 줄어가지만 떠나기도 어렵다. 새 시장은 멀기만 하고 '경쟁자만 죽이면' 하는 미련만 남는다. 경쟁의 바다는 점점 쓰러지는 업체들의 피로 붉게 물들어간다.


구경하는 입장에서는 이해가 안 가는 광경이지만 기업들은 스스로 혁신하고 있다고 착각한다. 사실 그것은 진정한 혁신과는 거리가 먼 점진적 개선(incremental improvement)에 불과한 데도 말이다. 기업들은 신제품 출시 때마다 혁신적인 제품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 가운데 절반 이상은 기존 제품을 조금 변형시킨 것에 지나지 않는다.


영국의 시장조사 업체인 리서치인터내셔널이 수년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신제품의 65%가 기존 제품의 라인 확장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신제품 가운데 진정한 신상품은 15%에 불과했다. 경쟁사보다 '조금 나은' 수준이면 만족하고 있다는 얘기다.


이런 상황을 소비자들이 알아차리지 못한 채 많이 사주기만 한다면야 문제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소비자들은 고만고만한 제품들에 질려 과거와 달리 특정 브랜드만 고집하지는 않는다.


장기간 특정 회사 치약만 쓰다가도 어느날 다른 회사 제품이 대폭 세일을 하면 1년치를 사버리는 게 요즘의 소비자다. 제품이나 서비스가 서로 닮아가는 범용 상품화(commoditization) 현상이 나타나면서 소비자가 가장 많이 따지는 것은 이제 가격이다. 싼 물건이 잘 팔린다는 얘기이며,그만큼 기업들의 마진은 줄어드는 것이다. 탈출구는 있다. 고객들이 지갑을 열 만한 새로운 가치를 제공하면 된다.


그러나 레드오션에 빠진 기업들은 그런 사고를 할 형편이 못 된다. 배운 것이라고는 오직 경쟁에서 이기는 법뿐이기 때문이다. 경쟁은 끊임없이 이어지고 소비자와는 점점 먼 길로 가게 된다. 블루오션을 몰랐던 시절의 이야기다.


김남국 기자 nk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