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여록] 사장 선임이 대선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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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원 선겁니까,대통령 선겁니까. 이렇게 요란스러워서야 원…."
통신업계 사람들은 요즘 차기 KT 사장 공모 과정을 지켜보며 혀를 끌끌 찬다. 이들은 한결같이 "남의 회사 일이지만 너무 많은 말이 나돌아 볼썽사납다"고 지적한다.
3년 임기 사장 뽑는데 왜 이렇게 시끄럽냐는 얘기다.
통신업계에서는 지난해 가을께부터 차기 KT 사장 선임과 무관하지 않은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현 사장을 비난하는 발신자 불명 투서가 언론사에 배달됐고,"OO고 출신은 안된다"느니 "아무개 세력이 헛소문을 퍼뜨리고 있다"느니 하는 말이 난무했다.
최근에는 신분을 밝히지 않은 채 특정 후보의 비리를 제보해 줄 테니 만나자는 전화가 걸려오기도 했다.
'상부'에서 현 사장을 마뜩지 않게 생각하고 차기 사장으로 점지해 둔 사람이 있다는 얘기,모씨가 이 사실을 알고 응모를 포기했다는 얘기도 나왔다.
15일 밤과 16일 아침엔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다.
15일 밤엔 접수 마감일인 13일까지 응모하지 않았던 남중수 KTF 사장이 헤드헌터 추천으로 응모키로 했다고 밝혔다.
이용경 현 KT 사장이 응모하면 나서지 않기로 했던 남 사장이 추천을 수락함에 따라 판세가 달라졌다.
이유야 어떻든 결국 남 사장이 피하고 싶어했던 모회사와 자회사 사장 간 경쟁하는 모양새가 돼 버렸다.
이튿날 아침 이 사장은 남 사장이 응모했다는 보고를 받고 후보 접수를 전격 철회했다.
민영화된 KT에 연임 전통을 세우고 떠나겠다던 이 사장이 중도 하차한 것.
접수 마감일엔 자신이 응모했다며 언론사에 보도자료를 뿌린 후보도 있었다. 신문에 얼굴사진이 실리고 이름이 거론되게 하려는 전략일 게다.
이와는 반대로 '열심히 뛰고 있다'고 알려졌는 데도 응모했느냐는 질문에 함구하며 그림자처럼 움직이는 후보도 있다.
KT 사장 선임 과정을 지켜보면 "대통령 선거냐"는 반문이 당연해 보인다.
임기가 한참 남았는 데도 현직을 끌어내리는 것이나 상대를 헐뜯는 수법이 후진국 대통령 선거를 연상시킨다.
우수한 인재를 공모한다는 취지야 뭐가 나쁘겠는가.
하지만 귀가 따가울 정도로 잡음을 일으키는 현재의 방식은 좋아 보이지 않는다.
고기완 IT부 기자 dada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