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의 존재목표는 고객에게 무엇인가를 파는 것이다. 고객이 없는 기업은 죽는다. 따라서 고객이 무엇을 원하느냐에 기업은 항상 관심을 가져야 한다. 많은 업체들이 '고객을 위한 가치창조'를 앞세우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현실은 다르다. 대부분의 기업이 선호하는 것은 고객 가치보다는 오히려 '세계 최초' '최상의 품질' 등이다. 경쟁사들을 제치고 세계에서 처음 만들었으니,경쟁사보다 훨씬 품질이 좋은 제품이니 당연히 팔릴 것으로 믿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이는 공급자적인 사고일 뿐이다. 고객이 원하는 것은 '최고'나 '최상'이 아니라 자기에게 필요한 것일 뿐이다. 그렇다면 기업이 고객이 원하는 것에는 눈을 감고 경쟁자 죽이기에 몰두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렇게 해야 시장을 장악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기존의 경쟁전략론을 익혀온 탓이란 지적이 있다. 1960년대 미국 하버드대학에서 개발돼 지금도 널리 사용하고 있는 'SWOT 분석'을 보자.SWOT는 강점(strengths) 약점(weaknesses) 기회(opportunities) 위협(threats)을 분석해 지금의 상황을 진단하고 가능성을 예측해 보는 전략분석 도구다. 여기서 강점,약점이란 경쟁사에 비해 어떤 점이 강하고 약한지를 의미한다. 기회와 위협도 경쟁사들의 움직임과 직접 관련이 있다. 경쟁을 대전제로 하고 있어 고객들이 끼어들 여지는 거의 없다. SWOT 분석은 하나의 예에 불과하다. 이후 개발된 'BCG(보스턴컨설팅그룹) 메트릭스' 등 대부분의 전략분석 틀은 레드오션적 시각을 담고 있다. 급기야 1980년대 들어서는 하버드 경영대학원의 마이클 포터 교수에 의해 '전략=경쟁전략'이란 등식이 사실상 확립됐다. "전략 수립의 핵심은 경쟁에 잘 대처하는 것"이란 포터 교수의 핵심 명제는 20여년간 경영자나 전략기획 담당자의 사고에 깊이 각인돼온 것이다. 경쟁전략에서 '고객'을 생각하는 것은 마케팅이나 서비스 담당자들의 몫일 뿐이다. 나이키와 같은 마케팅 회사들이 승승장구할 수 있었던 것은 다른 기업들이 이렇게 '경쟁의 함정'에 빠져 고객을 잊은 탓인지도 모른다. 당대의 두뇌들이 만든 경영전략론이 모두 경쟁의 함정에서 벗어나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 무엇보다 기업전략 자체가 적과 싸워 이기는 전쟁전략에서 유래됐기 때문이다. '전략(strategy)'이라는 용어부터 그렇다. 이 말은 지휘관의 전체적인 용병술을 뜻하는 고대 그리스어 '스트라테지아(strategia)'에서 파생됐다. 본부(headquarters) CEO(Chief Executive Officers) 등 경영에 쓰이는 핵심용어에도 군대냄새가 물씬 거린다. 하버드경영대학원의 고급 경영자 프로그램(AMP)도 제2차 세계대전 중 개설된 전시 경영훈련 프로그램이 그 모태다. 전쟁 관점에서 수립된 전략은 한정적이고 움직이지 않는 영토의 한 조각을 차지하기 위해 적과 대치해 싸우는 행태로 묘사된다. 누군가가 승리하면 반드시 누군가가 패배하는 제로섬 게임이 기본 모델이다. 그러나 시장공간은 영토와 달리 절대 한정적인 것이 아니다. 싸우지 않아도 많은 승자가 나오는 플러스섬 게임으로 발전할 수 있다. 상식으로 돌아가보면 전략의 목표는 더욱 명확해진다. 기업은 어떤 종류든 두 극단의 스펙트럼 사이에 존재한다. 한 쪽은 무한한 경쟁자들이 참여하는 '완전경쟁시장'이다. 반대편 끝은 한 업체만 있는 '독점시장'이다. 기업 전략의 목표는 아무 것도 먹을 것이 없는 완전경쟁에서 멀리 떨어져 독점쪽 가까이로 가는 것이다. 기업이 기술을 개발해 특허를 출원하고 브랜드 관리에 많은 투자를 하는 것은 이런 독점적 지위를 차지해 지속적인 고성장을 이루기 위해서다. 전쟁전략의 시각에만 함몰돼 피바다에 머물기보다 블루오션전략을 통해 새로운 시장공간을 창출하기 위한 사고의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송대섭 기자 dss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