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90년 9월,영국 런던 히드로공항 근처의 허름한 호텔인 엑셀시아의 회의실.유럽을 대표하는 글로벌 전자업체인 네덜란드 필립스의 얀 티머 신임 회장이 세계적 경영석학 3명과 마주앉았다. 회사의 실정을 설명하는 그의 표정은 참담했다. 당시 필립스는 저렴한 가격에 깔끔한 디자인과 품질을 갖춘 일본제품에 시장을 뺏겨 공중분해될 위기에 처해 있었다. 필립스가 구조조정 프로젝트를 지휘할 핵심 지도교수(core faculty)로 위촉한 이 3명의 석학은 김위찬 프랑스 인시아드 경영대학원 교수,CK 프라할라드 미국 미시간 경영대학원 교수,수만트라 고샬 영국 런던경영대학원 교수였다. 티머 회장은 이들에게 100년 묵은 '공룡'의 수술을 맡아줄 것을 부탁했다. 네 사람은 10일 뒤 필립스 본사에서 다시 만나 구조조정 청사진을 논의했다. 방향은 2단계로 정리됐다. 먼저 지혈을 하고 그 다음에 수술을 단행해야 한다는 것.티머 회장은 이를 바탕으로 필립스 회생 방안인 '센추리온(Centurion)'을 마련,공식 발표했다. 센추리온은 최고경영진과 핵심 지도교수 3명,보조 자문교수 100여명,5개 유수 컨설팅회사의 컨설턴트 600여명,10여명의 임원으로 구성된 필립스 내부 전담팀,필립스 공장조직 등 6개 그룹이 참여하는 대대적인 프로그램이었다. 필립스는 전략적으로 중요한 분야에서 이익이 나야 한다는 지도교수들의 조언에 따라 대규모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60여개나 되는 방만한 사업을 6개로 줄였으며 5만여명을 감원했다. 자산 매각,생산기지 통폐합도 병행했다. 미래가 없는 일본 마쓰시타와의 합작법인 지분과 알짜기업인 폴리그램도 매각했다. 센추리온은 6개 사업을 중심으로 톱다운 방식으로 진행돼 회장에서 말단 직원들까지 참가했다. 워크숍에선 임직원이 '계급장 떼고 붙을' 정도로 상하간 열띤 토론도 벌어졌다. 뼈를 깎는 노력 결과 90년 27억달러의 적자를 냈던 필립스는 센추리온 추진 3년 만에 부채를 절반으로 줄였다. 센추리온 프로젝트는 티머 회장이 퇴임한 96년에 공식적으로 종결됐다. 송대섭 기자 dss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