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연기와 취소 가능성까지 제기됐던 한ㆍ일 정상회담이 우여곡절(迂餘曲折)을 겪은 끝에 어제 오후 청와대에서 열렸다. 올들어 악화일로를 걸어왔던 한ㆍ일 관계가 이번 회담을 통해 완전히 정상화됐다고 보기는 힘들지만 어려운 상황에서 정상간의 회동이 이뤄졌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의미가 적지않다고 할 수 있다. 실제 노무현 대통령은 정상회담결과에 대해 "교과서 공동연구 등 역사문제와 관련해 두가지 낮은 수준의 합의에 도달했다"고 언급했다. 고이즈미 총리도 야스쿠니 신사참배 등 대부분의 사안에 대해 "일본내 여론등 제반상황을 고려해 검토하겠다"며 비껴갔다. 결국 두 정상간에 실질적인 합의가 이뤄졌다기보다는 서로의 입장을 전달하고 이해를 촉구하는 수준에 그쳤다는 점에서 아쉬운 면이 없지 않다. 하지만 우리는 이번 정상회담이 향후 한ㆍ일 관계를 새롭게 구축하는 새로운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고 본다. 과거 역사에 대한 서로 다른 인식을 하루아침에 상대방이 100% 만족할 수 있도록 바꾸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울 것이다. 따라서 더 이상 '과거'문제에만 매달릴 것이 아니라 그와 함께 '미래'를 위한 생산적이고 발전적인 토론도 병행해야 한다고 본다. 실제 한ㆍ일 양국 사이에는 풀어야 할 사안이 산적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제 정상회담에서도 논의가 있었지만 우선 북핵문제의 평화적 해결과 6자회담 재개를 위해 양국간의 공조(共助)는 필수적이다. 지난 17일 정동영 통일부장관이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을 만났고, 이해찬 총리가 오늘 중국을 방문하는 등 한반도를 둘러싼 정세가 긴박하게 돌아가고 있음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두 나라 경제와 문화 과학 교류를 생각해도 한ㆍ일 관계는 큰 틀에서 보다 대국적인 관점으로 봐야 한다. 지금 두 나라는 경제교류 활성화를 위해 자유무역협정(FTA)을 추진 중에 있고, 경제인들에 대한 비자의 항구적 면세추진 등 민간분야의 협력확대 차원에서 협의해야 할 사안이 한둘이 아닌 것도 사실이다. 이번 정상회담을 통해 그동안 갈등과 대립으로 치달았던 한ㆍ일 양국의 외교관계가 어느 정도 해소됐다고 본다면 이제는 이를 토대로 경제 사회 문화 등 다양한 분야의 교류를 활성화시킬 수 있는 여건조성에 서로 노력해야 할 것이다. 그것이 바로 양국의 국익에 보탬이 되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