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전 하고 달라진 게 뭡니까?" "시장이 원하는 대로 따라가서 진짜 일류가 되겠습니까?" "지금 잘 번다고 성장이 보장됩니까?" 지난 2000년 8월21일 경기도 용인에 있는 삼성국제경영연구소 강당. 문 밖에서도 들릴 정도로 카랑카랑한 경상도 사투리에 실린 비판이 연방 쏟아졌다.


특강 연사는 김위찬 프랑스 인시아드경영대학원 교수. 듣는 사람은 윤종용 부회장을 비롯한 삼성전자 고위간부 400여명이었다.


당초 예정을 훨씬 넘겨 4시간 가까이 진행된 이날 특강에서 김 교수는 "세계 일류가 되기 위해선 시장주도(market driving) 기업이 돼야 하는데 삼성전자는 여전히 시장지향(market driven) 수준에 머물고 있다"며 비판의 목소리를 이어갔다. 그는 "경쟁을 피해 새로운 시장공간을 창출하지 못하면 삼성전자에도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른다"고까지 경고했다.



블루오션전략의 창시자인 그의 지적은 그러나 달리는 말을 더 열심히 뛰도록 독려하는 '주마가편(走馬加鞭)'이었다. 삼성전자는 국내 대기업 가운데 처음으로 블루오션전략을 도입해 현장에서 체계적으로 적용해온 회사다.


올해 초 출간된 '블루오션전략'에 사례가 소개된 유일한 국내 기업이다.


삼성전자는 지난 98년에 'VIP(Value Innovation Program)센터'를 설립,블루오션 활동을 펼쳐 왔다. 애니콜을 비롯 DVD콤보,파브,센스Q,마이젯,지펠냉장고 등 '빅히트' 상품들이 모두 VIP센터의 '1차 검증'을 거쳐 탄생했다.


2003년 VIP센터가 수행한 과제는 전년에 비해 38% 늘어난 82개. 지난해에는 90여개 과제에 2000여명의 전문인력이 참여했다.



현재는 반도체를 포함한 전 제품군의 주요전략 아이템이 상품화 기획 과정에서 VIP센터의 블루오션 검증을 받고 있다. 상품기획서의 표지에는 블루오션전략 핵심도구인 '전략캔버스'를 반드시 그려 넣도록 의무화했다.


삼성전자는 이제 일본 열도를 '삼성전자 쇼크'로 발칵 뒤집어 놓을 정도로 명실상부한 초일류기업으로 도약했다.


이 회사의 지난해 순이익은 100억달러(약 1조엔)를 넘었다. 소니와 마쓰시타를 비롯 히타치 NEC 도시바 등 일본 상위 10대 전기·전자 업체의 지난해 순익을 모두 합쳐도(5370억엔) 삼성전자의 절반에 불과했다.


특히 삼성의 영업이익률은 20.9%,반도체만 보면 41.4%에 달할 정도로 수익성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이런 성과엔 블루오션전략을 적용한 혁신도 많은 도움이 됐다. 이동진 VIP센터장은 "예전에는 삼성전자가 생산하는 세트제품 모델 가운데 30%에서 전체 이익의 80%가 창출됐다"며 "블루오션전략 활동을 통해 수익에 기여하지 못하는 모델을 사전에 걸러내는 작업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과정에서 원가절감률을 평균 10%포인트 높이는 성과도 거뒀다. 2001년부터 3년간 2조5000억원의 원가를 절감했으며 2004년 한 해에만 3년치와 맞먹는 규모의 원가절감을 달성했다.


올해는 차별화된 제품 컨셉트를 기획하는 과제를 별도로 선정해 그동안 원가절감에 치우쳤던 블루오션 활동의 균형을 맞출 계획이다. 특히 이번 과제에선 전략캔버스와는 별도로 제품 컨셉트를 3차원 가상현실(VR) 프로그램으로 구현해 판단의 보조자료로 사용할 예정이다.


블루오션전략이 삼성전자에서 뿌리 내릴 수 있었던 데는 최고경영진의 관심과 지원이 큰 몫을 하고 있다. 특히 윤종용 부회장의 관심은 지대해 지금도 VIP센터를 불시 방문하는 일이 잦은 것으로 알려졌다. 윤 부회장은 지난 97년과 2000년 김위찬 교수를 직접 초청,임원 대상 특강을 열었고 98년에는 VIP센터 설립을 주도했다.


삼성전자 VIP센터는 올 들어 블루오션전략이 세계적인 키워드가 되면서 다시 주목을 받고 있다. '이미 7년여 전부터 그 가치를 알고 적용한 기업'의 대접을 받고 있는 셈이다. 블루오션전략이 '6시그마'와 함께 삼성을 대표하는 경영도구로 뿌리를 내리고 있는 것이다.


송대섭 기자 dss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