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필 노래 '정'의 가사는 이렇다. '정이란 무엇일까/ 받는 걸까 주는 걸까/ 받을 땐 꿈속 같고/ 줄 때는 안타까워/ 정을 쏟고 정에 울며/ 살아온 살아온 내 가슴에/ 오늘도 남 모르게 무지개 뜨네.' 정말이지 정(情)이란 뭘까. 사전적 뜻은 '마음의 움직임, 친근한 마음, 염려하여 헤아리는 마음'이지만 정을 설명하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그저 사랑보다 은근한 것이려니, 때로는 사랑보다 질기고 슬픈 것이려니 하는 수밖에.이러니 고운 정도 아니고 '미운 정'을 정의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런데도 우리는 '지지고 볶아도 함께 지내다 보면 고운 정 미운 정 다 든다''미운 정이 더 무섭다'고들 말한다. 세월이 변해 오래 살아도 미운 정이 들지 않는 걸까. 나이 들어 헤어지는 '황혼 이혼'이 급증하고 있다고 한다. 통계청 조사 결과 20년 이상 같이 산 부부의 이혼이 23년 동안 4배 가까이 늘어났다는 것이다. 배우자 부정이나 경제적 이유보다 '성격차'가 훨씬 많은 걸 보면 부부싸움은 칼로 물 베기라는 말도 무조건 맞지는 않는 모양이다. 우리나라 부부가 이혼의 가장 큰 걸림돌로 내세우는 건 자녀문제(74.6%)다. 자식 때문에 갈라서지 못한다는 건 황혼이혼이 갑자기 작정되는 게 아님을 알려준다. 더욱이 황혼이혼의 70%가 여성의 요구에 의한다는 사실은 남편이 모르는 새 아내의 가슴에 미운 정이 아닌 미움이 자란다는 걸 의미한다. 황혼이혼에 대한 시각은 '노년 인권 찾기'라는 게 일반적이지만 재산분할청구제도가 도입된 뒤 늘었다는 점에서 '삭막한 세태의 반영'이라는 주장도 있다. 어쨌거나 나이 들면 '이사갈 때 강아지를 안고 트럭에 먼저 앉아 있어야 한다'는 식의 우스개가 괜히 나오는 건 아닌 셈이다. 미운 정이란 어쩌면 정이기보다 용서의 감정일지 모른다. 귀찮게 굴어도 허물없어 그런가 보다 하고, 속이 부글부글 끓어도 사정이 있었겠지 생각할 수 있는.그러자면 서로 길들인 상대에 대한 최소한의 도리와 예의가 필수적이다. '나이든 아내가 무섭다'고 할 게 아니라 아내의 마음 속을 헤아릴 일이다. 박성희 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