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주 < 서강대 명예교수·경제학 > 한국경제호가 순항하지 못하고 있다. 작년 성장률이 당초 목표를 밑도는 4.6%에 머문데 이어 올해에는 4%도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하기야 한국이 이미 OECD 가입국이 된 지금에 와서도 고도성장하던 시기의 템포가 그대로 지속되기를 바라는 것은 무리이다. 세계 11위의 GDP 규모를 가진 경제가 과거 최빈국의 작은 규모경제에서 치고 올라오던 도약단계의 성장가속도를 유지하길 기대할 수 없다. 그러나 작년은 전세계적으로 경제가 호황을 이룬 해였다. 거의 모든 나라가 보통 이상의 성장을 이룩했으나 한국 경제만 잠재 성장률을 밑돌았다. 중국 등 주요 경쟁국들과의 성장률 격차는 더욱 크게 벌어졌다. 성장부진 요인은 어디에 있는가? 우선 나라밖에서 찾아 보자.천정부지로 가격이 치솟는 원유,철광 구리 등 국제원자재 가격이 주범일 것 같지만 이것은 그 생산국가를 제외한 모든 나라에 공통된 악재였다. 작년 수출은 미증유의 호황이었고 경상수지 흑자폭도 기록적인 수준이었다. 눈을 비비고 찾아 보아도 유독 한국만을 겨냥한 해외발 악재는 없었다. 그러면 성장부진의 주범을 국내에서 찾아내야 한다. 정부는 과거 군사독재 정부시대의 폐습이 잔존해서 성장부진이 불가피했다고 말하고 싶을 것이다. 그리고 김대중 정부시대에 빚어진 가계부채 중압이 소비지출을 위축시키고 있다는 지적은 타당하다. 그러나 정부지출(복지예산 사회간접자본 등)의 폭발적 확장에도 불구하고 그 승수효과가 거시경제 호전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는 데 대한 소명책임은 분명 현 정부에 있다. 왜 기업 설비투자가 주로 해외에서 진행되는 반면 국내에서는 부진한지,왜 건설투자가 온탕·냉탕을 번갈아 치르다가 독감에 걸려 몸져 누운 신세가 됐는지,설명할 책임이 정부에 있다. 일반적으로 논자들은 정부의 경제실책을 코드인사에 두고 있다. 사실상 코드인사가 만연해 보인다. 그러나 적어도 경제각료들의 면면을 보면 그 같은 평가가 유효해 보이지 않는다. 한덕수 경제부총리는 국제적인 시각을 가진 합리적인 관료이다. 차츰 자리의 경력이 쌓이면 카리스마도 겸비될 것이다. 김대환 장관의 경우 역대 노동부 장관 중 가장 돋보이는 장관으로 자리굳힘하고 있다. 이희범 산자부 장관도 무리 없는 관료이고 변양균 예산기획처 장관도 균형감 있는 인물이다. 윤증현 금감위원장도 무게중심을 잡아가고 있다. 진대제 정통부 장관도 혁신 마인드를 가진 것으로 보인다. 경제부처 외곽에 있지만 오명,김진표 두 부총리도 모두 수준급의 인물들이다. 이런 인물을 자리에 앉히고도 왜 경제가 이 지경인가? 두 가지 이유가 있다. 하나는 우리의 경제 질환이 단순히 정부의 정책으로만 다스릴 수 없을 만큼 정치·사회·문화 등과 갈래갈래 깊이 연결돼 있다는 것과,다른 하나는 장관들이 다른 정권 때만큼 운신의 폭이 넓지 않아 보인다는 것이다. 이상 두 가지는 서로 맞물려 있다. 청와대 주변의 많은 위원회가 있고 이들을 구성하는 이념지향형 논객들과 이익집단들의 목소리가 거시경제적으로 균형된 경제논리를 압도하는 경향이 있다. 이렇게 보면 성장부진의 탈출구가 보인다. 먼저 각종 위원회를 대폭 정리하고 그 역할을 그야말로 '자문'에 그치도록 하고 행정조직상의 경제부처 장관들에게 힘을 실어주어야 한다. 대통령이나 총리가 경제를 직접 챙기려 들지 말고,관심은 갖되 정책수립과 집행은 각료에 위임해 경제문제가 경제논리에 따라 풀리도록 해야 한다. 정부가 호령해 경제가 잘되던 시대는 지났다. 정부의 지나친 개입은 민간기업의 창의적 경영을 위축시킬 뿐이다. 시장경제로 방향선회를 분명히 해야 한다. 세계경제의 물결을 함께 타고 가는 방향타를 곧추 잡아야 한국경제호가 순항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