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태 < 한국증권연구원 부원장 > 얼마 전 한국증권연구원이 발표한 연구결과에 의하면 상장기업의 평균 상장유지 비용은 2004년 기준으로 6억2000만원에 달한다. '상장비용이 너무 많이 들어 줄여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는 것도 이해할 만하다. 다만 명심할 점이 있다. 상장비용 문제는 단순히 기업이나 비용 차원에서만 논의할 사안이 아니라는 점이다. 다양한 시각에서 핵심 이슈들을 명확히 이해해야만 비로소 기업에 도움이 되는 대안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첫째, 상장 유지는 비용만 볼 것이 아니라 상장에 따른 편익과 함께 논의돼야 한다. 기업이 상장했다는 것은 사람으로 말하면 성인이 되었다는 말이다. 성인이 되면 예절도 지켜야 하고 남자라면 군대도 갔다와야 한다. 어린이에게 요구되지 않는 책임과 의무가 생기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상장기업에는 비상장 시절에는 없던 비용이 발생하게 마련이다. 문제의 본질은 상장비용과 상장편익의 상대적 경중이다. 비용이 아무리 크더라도 편익이 더 크면 기업은 상장을 유지할 것이다. 기업의 상장을 이끌어내는 유인책도 비용을 줄이는 것보다 편익을 늘리는 방법이 효율적이다. 왜냐하면 상장부담을 줄이면 비용은 줄지만 투자자보호에 문제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부도 상장기업들에 비상장기업들이 누릴 수 없는 혜택을 부여하는 방안을 적극 고려할 필요가 있다. 최근 일본에서 논의되고 있는 회사법 개정방향은 우리나라 상장기업들에도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해 준다. 강제전환증권(mandatory convertibles),사업부주식(tracking stock),의결권제한주식,신주예약권,세제혜택 등 기업의 경영과 금융에 실제로 도움이 될 수 있는 수단을 제공해주는 것이야말로 가장 효과적인 상장유지 방안이다. 둘째,상장유지 비용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투자자 입장이 경시돼서는 안 된다. 만일 상장비용 경감이라는 명목 하에 투자자보호 관련 규제가 지나치게 완화되면 그 비용은 고스란히 상장기업 몫으로 돌아간다. 투자자가 상장기업을 신뢰하지 못해 시장을 떠나면 주가가 떨어지고 기업은 높은 자금조달 비용을 부담해야 하는 것이다. 국민을 보호해야 하는 정부가 병역의무를 무턱대고 면제해 줄 수는 없다. 정부가 해야 할 일은 가벼운 총과 군화를 개발하고 군기가 해이해지지 않는 범위 내에서 장병들이 군대생활을 즐겁게 할 수 있도록 하는 일이다. 상장규제도 마찬가지다. 투자자를 보호해야 할 정부가 상장규제를 마냥 완화할 수는 없다. 그러나 투자자보호에 지장이 없는 제도는 과감히 개혁할 필요가 있다. 지나치게 많은 공시,특히 수시공시는 확 줄이자.지켜야 할 것을 과감히 줄이고 위반했을 경우 제재를 강화하면 된다. 물이 너무 맑으면 고기가 살 수 없다. 돈을 버는 기업에 너무나 투명한 경영,지나친 공시를 요구하면 기업이 견딜 수 없다. 셋째,상장유지 문제는 증권시장의 국제경쟁력 차원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지금 각국 거래소들은 국경을 초월하여 우량기업들을 유치하는 데 혈안이 되어 있다. 같은 콩국수 집이라도 한 집은 줄을 겹겹이 서는데 다른 집은 파리를 날린다. 기업도 이왕이면 우량기업이 많이 상장되어 있고 유동성이 풍부한 거래소에 상장하려 한다. 소극적으로 상장폐지만을 걱정하지 말고 상장유인을 제공하여 적극적으로 외국기업을 상장시키자.시장의 국제적 위상제고는 유동성을 증대시키고 국내 기업이 상장을 유지하는 데 더욱 큰 메리트가 될 것이다. 이중 국적자가 한국 국적을 포기하는 것을 억지로 막을 수는 없다. 한국 국민으로서의 혜택이 커지면 국적 포기자는 저절로 줄어든다. 국내 증시의 국제적 위상 제고야말로 근본적인 상장유인책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