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올해 의욕적으로 도입한 미술은행(Art Bank)제가 파행 운영되고 있다. 역량 있는 젊은 작가들의 작품을 구입해 창작 의욕을 고취시키고 이를 통해 미술 시장을 활성화한다는 게 미술은행제의 취지.하지만 상반기 시행 과정을 보면 이 같은 취지와 달리 미술단체나 지역 학교별 '나눠먹기' 식으로 작품 구입이 이뤄지고 있다는 지적이 미술계에서 나오고 있다. 미술은행은 지난 5월 말까지 추천제로 171점,현장 구입제로 31점 등 모두 202점의 미술품을 구입한 것으로 집계됐다. 금액으론 8억8900만원으로 올해 배정된 예산 25억원 중 인건비를 제외하면 약 30% 수준이다. 구입 작품의 작가 연령을 보면 20~30대가 26%에 불과한 반면 40대 이상은 74%에 달해 당초 취지와 달리 기성작가 위주로 구입이 이뤄진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20대 작가의 구입이 단 한 점에 그친 데 반해 50대 이상은 66점에 달했다. 게다가 추천을 통해 구입한 작품 중에는 미술계 내에서조차 생소한 이름의 작가가 30%를 넘는 것으로 파악됐다. 출신 학교별로는 H대와 S대 출신 작가가 37%(75점)에 달해 특정 학교 편중 현상이 여전한 실정이다. 추천제를 통한 구매는 30인 이내의 작품추천위원회에서 작품을 추천하고 사안별로 5~7명으로 구성된 구입심사위원회의 심사를 거쳐 결정된다. 미술품 구입이 이처럼 미술은행 취지와 어긋난 방향으로 집행되고 있는 것은 미술계 인사들로 구성된 추천위원과 심사위원들이 학연 단체별로 뿌리 깊게 서로 얽혀 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한 미술계 관계자는 "미술은행의 미술품 구입을 마치 서민층에 대한 정부의 생활비 지원식으로 인식하고 있는 이들이 많다는 게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한다. 미술은행은 앞으로 3~4년간 매년 20여억원씩 미술품을 구입하고 소장 미술품들을 공공기관에 대여료를 받고 빌려줄 예정이다. 미술은행의 운영기구인 운영위원회 한 관계자는 "하반기에는 구입 과정에서 드러난 문제점을 개선해 나갈 방침인 것으로 안다"며 "하지만 작품성이 떨어지는 작품들을 누가 대여해 갈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문화관광부 관계자는 "추천위원들을 당장 공개하라는 요구가 있지만 그럴 경우 부작용이 더 클 수 있다"며 "연말께 추천위원들이 어떤 작가를 추천했는지 모두 공개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성구 미술전문기자 sk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