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기업에 있어서 '투명성'이란 단어는 지난 2000년 전까지만 해도 아킬레스건이었다. 특히 회계문제에 있어서는 외국인들이 머리를 내젓는 게 다반사였다. 한국기업에 투자하고 싶어도 회계장부를 믿을 수 없어 포기하는 외국인들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최근에는 투명한 기업이라고 불러도 전혀 손색이 없는 회사들이 늘어가고 있다. 'Ethics Pay(기업윤리가 돈을 벌어준다)'라는 말이 기업의 기본적인 경영철학으로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투명경영을 유도하는 정부의 제도적 개선에 기업들이 적극 호응하면서 나타나고 있는 현상이다. 한국회계학회는 올해로 제5회째 투명회계 기업을 선정해 시상하고 있다. 올해 대상은 삼성전자풀무원 네오위즈에 돌아갔다. 삼성전자는 이미 글로벌 스탠더드를 넘어선 유리알 회계를 자랑하는 기업이다. 국제적으로 가장 엄격한 기준으로 평가되는 미국 회계개혁법안(S&O Act)까지 충족할 수 있는 수준의 내부통제시스템을 구축했다. 윤리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는 사안은 모두 걸러내고,회사가 발표하는 모든 정보는 정확성을 담보하도록 했다. 풀무원은 이사회 구성원의 절반 이상을 사외이사로 채운다. 지주회사체제로 전환하면서 지배구조의 투명성까지 확보했다. 네오위즈는 설립된 지 10년이 안 된 회사지만 회계에 관한 한 거짓이 없는 기업으로 유명하다. 내부회계관리제도를 일찌감치 도입해 회계정보에 대한 신뢰성을 높여왔다. 이처럼 투명회계가 한국 기업의 화두가 된 이유는 간단하다. 거짓된 정보를 제공하는 기업은 살아남을 수 없게 됐기 때문이다. 세상이 그렇게 달라졌다.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이 수십조원을 분식한 혐의로 검찰에 구속됐고,SK그룹의 경영권이 위협받았던 것도 따지고 보면 불투명한 회계가 원인이었다. 과거에는 관습적으로,혹은 어쩔 수 없이 회계장부를 조작하는 일이 있었고 사회도 이를 용인해주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주주중심의 시장구조가 정착되면서 회계의 투명성은 기업의 생존과 발전을 위해 필수적인 조건이 되고 있다. 투명회계는 기업의 본질인 이윤추구를 법의 테두리에서 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기업의 정보를 숨김없이 낱낱이 공개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열린 경영'과 일맥상통한다고 볼 수 있다. 법과 규정을 지키고 윤리적인 의사결정으로 임직원 고객 투자자 국가 등 모든 이해관계자에 대해 사회적 책임을 다한다는 뜻에서 윤리경영의 핵심으로 평가된다. 그렇다면 어떻게 투명회계를 실천할 것인가. 가장 중요한 것은 최고경영자의 강력한 의지다. 최고경영자가 확고한 의지를 가지고 투명한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 이를 시스템화해 내부적으로 고유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다. 투명회계 실태를 진단하고 전담기구를 설치해 운용하는 등 제도화 작업도 필수적이다. 삼성전자나 풀무원 등이 사외이사로 이사회 멤버의 절반 이상을 구성한 것은 바로 이 같은 이유에서다. 또 내부에 강력한 통제시스템을 두고 있다. 정보가 왜곡되거나 가감되는 것을 막기 위한 수단이다. 전자전표 전자결재 등을 통해 회계정보처리의 프로세스를 시스템화해 거짓이 스며들 틈이 없도록 만드는 기업도 늘고 있다. 삼성전자 윤종용 부회장은 "윤리에 기반을 두지 않은 기업은 결코 생존할 수 없는 윤리경영의 시대에 살고 있으며 투명회계는 바로 윤리경영의 핵심"이라며 "해외기업들보다 더 강력한 회계기준을 적용해 기업발전의 기본 요건인 신뢰를 확보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해영 기자 bon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