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기에 수도 브뤼셀 시내에서 차로 15분 거리에 있는 생테네르가.
시내에서 흔히 볼 수 있던 고풍스런 중세 건물과 현대식 고층빌딩은 온데간데 없고 '키네폴리스 브뤼셀'이라는 이름의 영화관 하나만 덩그러니 자리잡고 있다.
황량하기까지 한 지역이지만 오후 6시를 넘어서자 사정이 달라진다.
여름철 백야현상으로 해는 아직 중천에 떠있지만 밝은 표정의 연인과 가족들의 행렬이 줄을 이으며 어느덧 키네폴리스 주변은 축제의 장으로 변해간다.
영화표를 사기 위해 길게 늘어선 줄.극장 밖 카페에는 연인들이 사랑의 밀어를 속삭이고 아이들은 키네폴리스가 만든 작은 테마파크 '미니유럽'을 뛰어다닌다.
지난 1988년 탄생한 세계 최초의 메가플렉스(초대형 복합상영관)인 키네폴리스는 단지 영화만 상영하는 곳이 아니다.
영화만 보려면 브뤼셀 시내에서도 얼마든지 시설 좋은 극장을 찾을 수 있다.
그럼에도 브뤼셀의 영화 관객 중 50% 이상이 이곳을 찾는 이유는 가족이나 연인과 함께 멋있는 저녁 외출을 즐길 수 있어서다. 식사는 어디서 할지,영화 관람 후 어디에서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지 고민할 필요가 없다.
레스토랑과 카페,아이들을 위한 놀이시설까지 그야말로 '원스톱 서비스'다.
키네폴리스는 영화 상영 이상의 가치를 고객들에게 제공해 블루오션을 개척한 회사다.
이 회사가 1988년 25개 상영관을 동시에 연다는 계획을 발표했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비웃었다.
비디오 등의 영향으로 영화관객이 줄면서 극장을 미래가 없는 사양산업으로 인식하던 시절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100석에 불과하던 좌석수를 700석으로 늘리고 스크린 크기를 7mX5m에서 29mX10m로 키운다고 하니….현재의 좌석도 채우기 어려운 상황에서 덩치를 더 키우는 것은 위험스러운 도박으로 보였다.
그러나 고객들의 호응은 폭발적이었다.
시원시원한 스크린 크기에다 매진으로 허탕을 칠 염려도 없는 키네폴리스는 영화팬들이 꿈꾸던 바로 그런 극장이었다.
키네폴리스는 또 앞뒤 좌석 사이의 공간을 넓혀 옆사람이 지나가도 움직일 필요가 없게 배려했고 좌석의 경사를 높여 앞사람의 머리가 스크린을 가리지 않도록 했다.
철저히 고객의 시각으로 영화관을 재창조,TV와 비디오에 빼앗겼던 영화관객들을 되찾을 수 있었다.
뿐만 아니다. 키네폴리스는 '극장은 이런 모습이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깨뜨려 영화에 관심이 없던 비고객(non-customer)까지 끌어들였다.
'좁고 어두운 공간에 갇혀 영화 보는 일에만 몰두해야 하는 극장'을 기피하던 비고객들은 브뤼셀 외곽에 위치한 키네폴리스를 가족 나들이의 공간으로 받아들였다.
넓은 무료 주차장에다 야외 카페,레스토랑 등 각종 편의시설과 심지어 수영장까지 갖춰 놓아 브뤼셀 시민뿐 아니라 관광객들도 반드시 방문하는 명소가 됐다.
키네폴리스는 브뤼셀에서의 성공을 유럽 전역으로 확대해 현재 프랑스 스페인 폴란드 스위스 등지에 20개 극장(292개 상영관)을 운영하고 있다.
지난해 2450만명의 관객을 동원,2억유로(약 240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모두들 극장을 사양산업이라고 여기고 포기하려 했을 때 고객에게 전혀 새로운 가치를 제공해 일군 성공이어서 더욱 빛나 보인다.
키네폴리스의 성공 이후 세계적으로 이를 모방한 메가플렉스,멀티플렉스 등 복합영화관이 줄을 이었고 영화팬들의 삶도 그만큼 업그레이드됐다.
브뤼셀(벨기에)=유창재 기자 yooco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