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80년대 후반 벨기에 영화 산업은 내리막길로 치닫고 있었다. 비디오와 케이블TV가 가정에 보급되면서 간판을 내리는 영화관이 줄을 이었다. 남은 영화관들은 생존을 위해 몸부림쳤다. 상영 영화 수를 늘리는 등 가능한 수단을 총 동원했다. 1960년대부터 극장사업을 해온 알버트 버트와 마리로즈 클레이즈는 해결책을 찾기 위해 머리를 맞댔다. 이들은 레드오션에 빠져있던 기존 업체와 달리 폭넓은 시각으로 문제를 바라봤다. 영화산업이라는 한정된 범위에서 탈피했다. 특히 보완적인 서비스들이 영화관람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면밀히 살폈다. 이를 위해 영화상영 중은 물론 관람 전후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에 대해 고객의 시각에서 수없이 질문을 던졌다. 조사 결과 영화관람과 전혀 관련이 없는 것 같은 유아놀이시설 등이 영화관 매출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요소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아이 돌보는 사람을 구하지 못해 영화관에 오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했지만,그때까지 아이 돌보기를 영화관람과 연결시켜 생각한 극장 경영자는 없었다. 그뿐 아니다. 주차하기 어렵다거나 의자가 불편해 영화관에 가지 않는 사람도 있었고 작은 스크린이나 비좁은 복도,형편없는 음질에 대해 불평하는 관람객도 있었다. 볼 만한 영화가 적다고 불만을 늘어놓는 사람도 많았다. 버트와 클레이즈는 영람관람을 보완해 주는 이런 서비스에 집중해 25개의 스크린과 1600개의 좌석을 갖춘 키네폴리스를 만들었다. 유아놀이시설을 갖추고 조명시설이 잘 된 넓은 주차장을 마련했으며 팔걸이가 있는 푹신한 의자를 설치했다. 기존 영화관보다 10배 이상 넓은 스크린과 최첨단 음향장비도 설치했다. 하지만 키네폴리스는 관람료를 올리지 않고도 이 같은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었다. 도심 외곽에 영화관를 설립해 부지 구입비용을 크게 낮췄기 때문이다. 또 25개 상영관이라는 거대한 규모로 영화배급사와의 협상력을 높여 영화 구매비용을 끌어내렸다. 중앙집중식 매표소와 휴게실을 둬 인건비와 관리비도 대폭 줄였다. '메가플렉스'라는 새로운 개념은 사람들의 입을 타고 퍼져나가 따로 마케팅 비용을 쓸 필요도 없었다. 영화산업의 블루오션을 창출한 키네폴리스는 출범 첫 해 브뤼셀 영화시장에서 50%의 점유율을 차지했으며 죽어가던 벨기에 영화산업을 소생시키는 일등공신 역할을 했다. 버트그룹과 클레이즈그룹은 지난 1997년 합병해 키네폴리스그룹으로 새롭게 출범했다. 송대섭 기자 dss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