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특파원으로 도쿄에 주재했던 지난 90년대 중반,곁에서 지켜본 일본인들의 생활형편은 하루가 다르게 악화돼갔다. 개인이나 기업이나 가릴 것 없이 모두가 씀씀이를 줄이느라 혈안이 됐다. 욱일승천(旭日昇天)의 기세로 뻗어나가던 일본경제의 거품이 터지면서 보유자산이 급격히 줄어든 결과다. 한 때 4만엔선을 넘보던 닛케이 주가지수가 1만엔대로 폭락했고 92년 천장을 친 부동산가격도 내리막길을 줄달음쳤다. 특히 부동산 가격 폭락은 충격 그 자체였다. 당시 일본인들은 부동산은 사두기만 하면 무조건 오른다는 불패신화를 믿어 의심치 않았지만 끝내 거품은 터졌고 결과는 처참했다. 은행 돈을 최대한 끌어대며 내집 마련에 나섰던 샐러리맨들은 집을 팔아도 융자금조차 갚을 수 없는 현실에 피눈물을 흘렸고 부동산을 큰 투자수단으로 삼았던 기업들도 치명적 타격을 입었다. # 오랜만에 한국을 찾은 일본인 친구에게 물어봤다. 요즘 도쿄의 집값은 얼마나 되느냐고.30평 아파트가 보통 3000만엔 안팎,비싼 경우는 5000만~6000만엔을 호가한단다. 우리 돈으로 3억~6억원 선이다. 일본은 아파트 평수를 전용면적 기준으로 따지기 때문에 한국에선 40평형 정도에 해당한다. 서울 강남 지역의 같은 평형 아파트 호가가 10억원을 훌쩍 넘어선 사실과 비교하면 그야말로 헐값이 된 셈이다. 세계 최고수준의 물가를 자랑하는데다 경제규모는 우리의 10배, 1인당 국민소득은 3배에 육박하는 일본의 집값마저 단숨에 제압했으니 참으로 대단한 폭등세가 아닐 수 없다. # 서울은 도쿄와 다르다는 사람들이 많다. 최근의 부동산 상승은 강남 등 일부지역을 중심으로 한 것이어서 거품보다는 차별화의 성격이 더 강하다고 말한다. 정말 그럴까. 다른 지역에선 진입 자체가 불가능할 정도의 가격차를 충분히 설명해줄 만한 혜택이 과연 있는 것일까. 공급 부족을 들먹이지만 그보다는 오히려 다주택자들의 가수요와 아파트 부녀회의 가격담합이 더 큰 원인은 아닐까. 부동산 가격이 급락한다 하더라도 일본처럼 경제가 치명상을 입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한국의 은행들은 담보비율을 낮게 책정하고 있기 때문에 개인들의 파산이 금융부실로 연결되지는 않을 것이란 논리다. 그들은 과연 제2 금융권 업체들이 제2,제3의 담보를 설정하며 경쟁적으로 주택담보대출에 뛰어들고 있는 현실을 알고서도 그런 장담을 하고 있는 것일까. 한국과 일본이 정말 다른 것은 경기와 부동산 가격의 상관관계일 것이다. 일본은 이른바 잃어버린 10년으로 불리는 긴 불황에 들어선 이후 부동산가격도 14년째 줄곧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하지만 경제는 죽을 쑤고 있는데도 부동산가격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한국 땅을 팔면 프랑스나 캐나다 같은 나라를 5~6번씩 사들일 수 있고 세계 최고 부국인 미국 땅도 절반 이상 거둬들일 수 있다는 이야기이고 보면 부동산 거품은 이미 풍선처럼 부풀어 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풍선의 바람을 뺄 대책을 내놓기는커녕 온갖 개발계획을 남발하면서 바람을 더욱 불어넣고 있으니 버블붕괴에 대한 우려도 깊어만 갈 뿐이다. 이봉구 논설위원 bk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