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인희 < 이화여대 교수ㆍ사회학> 최근 통계청 발표에 의하면 20대 결혼율이 10년 만에 절반 수준으로 뚝 떨어졌고,대신 30~34세 결혼율은 남자가 약 20%,여자가 약 60% 증가한 것으로 밝혀졌다. 젊은 선남선녀의 결혼율 하락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이유는 저출산과 밀접한 관계가 있음은 물론이다. '출산파업'이 의외로 심각한 수준에 이르자 이를 극복하기 위한 방안의 하나로 '독신세'를 부과하자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는 상황 아니던가. 그러고 보니 흥미로운 조사결과가 하나 떠오른다. 1970년대 중반 미국에서 결혼과 정신건강 사이의 상관관계를 조사해보니 기혼 남성ㆍ미혼 여성ㆍ미혼 남성ㆍ기혼 여성의 순으로 정신건강이 악화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결국 남성은 결혼을 통해 정신건강을 확보하는 반면 여성은 결혼을 통해 정신건강을 양보하고 있었던 셈이다. 1990년대 후반 한국에서도 비슷한 조사를 해본 결과 다소 의외의 반응이 관찰됐다. 곧 한국인의 경우는 정신건강 지수가 미혼 남성ㆍ기혼 남성ㆍ기혼 여성ㆍ미혼 여성의 순으로 높게 나타났던 것이다. 이 결과를 두고 한국에선 남성이 여성보다 정신건강을 유지하는데 유리한 환경에 놓여있음을 이해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으나,결혼과 정신건강 간의 상관관계가 미국과 한국에서 역전돼 나타나고 있음을 해석하는 일은 만만치 않았다. 추론하건대 우리네 남성은 "그래도 총각 때가 좋았다"는 고백에서 감지되듯 결혼이 남성에게 가하는 책임과 부담이 상당히 강한 현실을 반영하는 것으로,우리네 여성은 "역시 아줌마가 당당하다"는 주장에서 읽히듯 미혼 여성이 겪어야 하는 유형무형의 사회적 제약이 여전히 강고한 현실을 반영하는 것으로 해석됐다. 한국에서 20대 결혼율이 눈에 띄게 감소하고 있음은 명백하나 결혼율 자체가 감소하고 있다는 증거는 빈약한 편이다. 단언하건대 한국은 '보편혼'(universal marriage) 사회로서 세계적 기준에 비춰볼 때 독신율이 가장 낮은 나라에 속한다. 다만 20대 남녀의 결혼율 감소와 더불어 특별히 남성의 결혼관에 의미심장한 변화가 진행되고 있음에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 같다. 불과 10여년 전만 해도 남성들은 결혼의 이유로서 '전통적 관례이므로''남들이 다 하니까''대를 잇기 위해''부모로부터 독립하여 심리적 안정을 얻기 위해' 등을 명분으로 내세웠다. 그러나 최근에는 이처럼 진부한 이유를 내세우지도 않거니와 결혼을 선택함으로써 얻게 되는 장점보다 결혼을 통해 잃게 될 단점이 커진다는 계산 하에 결혼을 최대한 연기하거나 기피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따라서 급변하는 사회구조적 상황에 맞추어 우리네 전통적 가족제도의 한계 및 약점을 극복하고 새롭게 재구성해가는 노력이 따라주지 않는 한 결혼의 '효용가치'는 계속 감소하게 될 것이다. 나아가 우리네 상황에선 시기상조일지 모르겠으나 결혼율과 출산율 사이에 별다른 상관관계가 존재하지 않는 서구의 경험을 음미해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일례로 프랑스에서는 신생아 2명 가운데 1명은 혼인관계와 무관하게 출생한다. 스웨덴에서는 이러한 현실을 정책에 반영해 '적자'와 '사생아' 간의 구분 자체를 폐기했다. 유럽에 비해 보수성향이 두드러지는 미국에서도 현재 가장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는 가족형태는 사실혼 관계에 있는 동거 커플과 이른바 '자발적 싱글 모(母)'이다. 결혼과 출산 공히 '운명'(by chance)으로부터 '선택'(by choice)으로 가고 있는 현실에서 이젠 결혼한 부부의 출산 부양책에 대한 관심 못지않게 다양화되고 있는 출산 현황을 인정하고 출산 자체에 대한 고정관념을 완화하는 방안을 조심스럽게 검토해야 할 때가 온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