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유가 급등과 내수 침체가 지속되면서 올해 한국 경제가 4% 성장도 어렵다는 각 연구기관들의 발표가 있었다. (한경 6월29일자 보도) 사실 이런 내용은 6월 들어 유가가 급등하고 수출이나 내수도 시원찮아지면서 금융시장에서는 감각적으로 느껴왔던 사실이다. 그런데 이런 보도가 나간 날 오히려 주가는 상승했다(6월28일 3.6포인트 상승).경제가 더 나빠질 것이라는 데도 주가는 이를 비웃듯이 꿈쩍 않고 있다. 수출품 가격을 수입품 가격으로 나눈 것을 교역 조건이라고 한다. 수출을 아무리 많이 하더라도 수출품 가격이 떨어지고 수입품의 가격이 오른다면, 즉 교역 조건이 악화한다면 수출 대금의 구매력은 하락한다. 동시에 구매력 변화를 반영한 소득 개념인 실질 소득도 감소한다. 우리나라처럼 수출과 수입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나라에서 교역 조건은 소득 수준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자동차 100대의 값어치는 교역조건 변화에 따라 2000년 '석유 100드럼'에서 2004년에는 '석유 50드럼'으로 달라진다. '자동차 100대'와 관련 있는 것이 국내총생산(GDP)이고 '석유 100드럼'이나 '석유 50드럼'과 관계 있는 것이 국민총소득(GNI)이다. GDP는 1년 동안 우리나라에서 재화와 서비스가 얼마나 많이 생산됐는지를 나타낸다. 이와 달리 GNI는 개방경제 체제하에서 교역 조건에 따라 달라지는 구매력에 초점을 맞춘 개념이다. GNI는 교역 조건에 따라 발생한 구매력의 변화와 해외 순수취 요소소득을 GDP에 합산해 산출한다. 해외 순수취 요소소득이란 한햇동안 우리나라 국민이 해외에서 벌어들인 소득에서 외국인이 우리나라에서 벌어들인 소득을 차감한 것이다. 교역 조건이 악화될 경우 GNI 증가율은 GDP 증가율보다 낮아진다. 이는 다시 국민들의 실질소득 감소로 이어져 체감 경기를 나쁘게 만든다. 심한 경우 GDP는 늘더라도 GNI는 떨어질 수 있다. 교역 조건이 개선되면 그 반대다. 한국은행 발표에 따르면 올해 1·4분기 GNI는 155조1452억원(2000년 가격 기준)으로 2004년 1분기에 비해 0.5% 증가하는 데 그쳤다. 이는 1998년 4분기(-6.1%) 이후 6년 만의 최저치다. 최근 GNI 증가율이 떨어지고 있는 원인은 대내 요인과 대외 요인으로 나눌 수 있다. 대내 요인은 국내 소비 및 투자 위축에 따라 경제성장률이 하락하고 있는 점을 꼽을 수 있다. 대외 요인은 교역조건 악화를 말한다. 장기적으로 보면 우리나라의 교역 조건은 1996년 이후 하락세를 나타내고 있다. 90년대 중반 이후 교역 조건이 하락한 원인으로는 주요 수출품인 반도체 가격 하락과 더불어 원·달러 환율 상승을 들 수 있다. 원·달러 환율 상승(원화 가치 하락)은 달러화로 표시된 우리 수출품의 가격을 낮추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원·달러 환율이 800원일 때 8000만원짜리 선반 기계를 미국으로 10만달러에 수출한다고 하자.만일 환율이 1600원으로 오르면 수출 기업은 5만달러까지 가격을 낮춰도 손해를 보지 않는다. 따라서 시장 점유율을 높이기 위해서라도 수출 기업은 가격을 낮춘다. 외환위기를 전후해 급등했던 원화 환율은 당시 우리나라의 교역 조건을 크게 악화시켰다. 그런데 최근 2,3년 사이 환율이 떨어지는 데도 교역 조건은 악화하는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 이는 1990년대 중반에 시작된 유가 상승세 탓이 크다. 유가는 1998년 이후 지금까지 4배 정도로 올랐다. 유가와 반도체 가격의 영향을 제외하면 교역 조건은 1996년 이후 큰 변동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세계적 원유 수급 여건, 우리 수출품의 가격 상승 전망 등을 감안할 때 향후 우리나라의 교역 조건은 갈수록 나빠질 가능성이 크다. 우리 수출품의 가격 상승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우리 생활 수준과 체감 경기에 큰 영향을 주는 교역조건 악화를 막으려면 석유 등 우리가 수입하는 에너지와 원자재를 가급적 아껴 쓰고 효율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또한 우리 기업들은 세계 시장에서 확고한 경쟁력 우위를 확보해야 한다. 그래야만 값을 내리지 않고도 수출을 늘릴 수 있기 때문이다. 김기범 연구원 kbkim@lger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