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일 비가 그친 싱그러운 오후에 찾은 대덕 벤처밸리의 벤처기업 쎄트렉아이.1층에 자리잡은 연구실에 들어서자마자 불빛을 깜빡이고 있는 소형 인공위성 한 대가 단번에 눈길을 사로잡았다. 무게 110㎏에 높이 1.2m,폭 1.2m의 매력적인 위성이다. 서너 명의 연구원들은 컴퓨터를 작동시켜 유리창 안 청정실에 자리잡은 위성의 기능을 점검하느라 분주했다. 먼지 한 톨 들어가지 않도록 애지중지 관리하고 있는 이 위성이 바로 우리나라의 해외 수출 1호 위성으로 기록될 '라자크새트'(Razak Sat)다. 다음 달 주문 국가인 말레이시아에 인도할 이 200억원짜리 위성을 바라보는 최순달 쎄트렉아이 회장(74)의 감회는 남달라 보였다. 직접 만든 토종 위성을 처음으로 해외에 수출하는 감격적인 순간을 앞두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가 한국과학기술원(KAIST) 인공위성센터장으로 국내 최초의 인공위성인 '우리별 1호'를 발사했을 때가 92년이니까 꼭 13년 만에 한국이 위성 수출국으로 변한 모습을 지켜볼 수 있게 된 것이다. "대형 인공위성 분야에서야 선진국을 따라잡을 수 없지만 200㎏ 안팎의 소형 관측위성 분야에서는 쎄트렉아이가 이미 세계적 수준을 확보했습니다. 자동차로 비유하자면 최고 성능의 소형차 제조업체인 셈이지요." 쎄트렉아이에 대해 설명하는 최 회장의 말에는 자부심이 그대로 묻어난다. 그도 그럴 것이 쎄트렉아이는 국내 유일의 인공위성 개발 전문업체다. 위성체와 탑재체,위성영상시스템 등 소형 위성에 관한 핵심 기술을 모두 갖고 있는 업체는 쎄트렉아이뿐이다. 국내에서 그것도 직원 55명의 벤처기업이 인공위성을 만들어 수출까지 한다는 게 신기해 보일 수도 있겠지만 이 회사의 인력 구성을 보면 고개가 절로 끄떡여진다. 최 회장을 비롯해 제자인 박성동 사장 등 직원 상당수가 우리별 1·2·3호 개발의 주역들이다. 이들이 회사를 설립한 것은 최 회장이 고희를 앞둔 지난 2000년.정부 정책에 따라 인공위성 개발 사업의 중심이 한국항공우주연구원으로 옮겨 가는 과정에서 독자 연구를 위해 인공위성 벤처를 창업했다. 최 회장은 지금도 우리별 1호를 프랑스 아리안 로켓에 실어 우주로 보낸 92년의 8월을 잊지 못한다. 제자들을 영국 등으로 유학 보내 선진기술을 익히고 마침내 위성을 제조한 당시 성공이 지금의 쎄트렉아이를 있게 한 원동력이었기 때문이다. "우리 손으로 인공위성을 만들고 싶었는데 80년대만 해도 우리나라엔 인공위성 전문가가 거의 전무했어요. 우선 사람부터 키워야겠다 싶어 89년부터 학생들을 외국에 보내기 시작했지요. 통신위성을 만들려면 149개 전문 기술 분야에서 각각 두 명 정도의 인력을 육성해야 하는데 당시 여건으로는 그렇게까지 할 수 없었지요. 그래서 한 학생당 두개 전문 분야를 배워오는 것을 목표로 유학을 보냈습니다. 한국에 돌아오면 국내에서 유일한 전문가가 되기 때문에 하나도 빠짐없이 철저히 알아오라고 당부하며 떠나 보냈던 게 눈에 선합니다." 이렇게 해서 최 회장은 89년 영국 서리대학으로 떠난 5명의 학생을 시작으로 총 27명의 학생을 해외에 보냈다. 해외에서 요소기술을 배워 귀국한 학생들이 우리별 시리즈를 개발,우리나라 위성시대 개막의 주역을 이뤘으니 최 회장의 계획은 제대로 성공한 셈이다. 우리별 시리즈를 쏘아올리며 기술력을 축적한 이들 인공위성연구센터 연구진은 쎄트렉아이로 자리를 옮긴 후에도 무명의 위성개발 벤처기업이라는 핸디캡을 딛고 적지 않은 성과를 거둬 나갔다. 말레이시아와 맺은 200억원 규모의 라자크새트 공급 계약이 대표적이다. "2000년쯤에 말레이시아가 위성 구매를 추진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있던 차에 마침 그 사업의 연구책임자를 국제회의에서 자주 만날 기회가 있었지요. 그래서 그를 붙들고 한국과 말레이시아가 함께 소형 위성 분야에서 만큼은 세계 최고 제품을 만들어 보자고 간곡히 설득했습니다. 같은 위성 후발국으로서 마음이 통했는지 결국 우리가 사업을 따냈지요." 최 회장은 "이 덕분에 회사 사옥도 2003년에 새로 마련했다"며 "회사 초기에 큰 도움을 준 프로젝트"라고 설명했다. 쎄트렉아이는 이어 싱가포르와 태국에 위성 설계 기술과 자세 제어 시스템 등을 공급하며 해외에서의 사업 기반을 넓혀 갔다. 기술 컨설팅 사업도 활발히 벌여 10여개국 연구진들에 위성기술을 가르쳤다. 태국의 경우 프랑스로부터 소형 위성을 구입하기로 계약을 맺고도 오히려 기술 교육을 받으러 쎄트렉아이로 찾아오기도 했다. 국내에서는 과학기술 위성과 다목적 실용 위성 개발에 참여했다. 어려움도 많았다. 소형 관측위성 분야에서의 기술력을 조금씩 인정받다 보니 간혹 있는 해외 입찰에서도 점점 견제를 받기 시작했다. 해외 유수 업체들과의 경쟁에서는 브랜드 인지도나 실적 면에서 한 수 접고 들어가야 한다. 그래서 국내 유명 대기업과 합작 프로젝트를 추진하려고 했지만 위성 시장의 불확실성 때문에 성공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런 어려움도 최 회장에게는 그다지 큰 문제가 되지 않는 듯하다. 그는 "쎄트렉아이가 소형 위성 분야에서 선진국에 뒤지지 않는 기술력을 갖고 있음을 자신한다"며 "제자들이 연구와 경영에 열정을 갖고 노력하고 있는 만큼 훌륭한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더하기와 빼기를 건너 뛰고 곱하기를 배우면 나중에 반드시 처음으로 되돌아 와야 합니다." 최 회장은 "우리나라가 위성 강국이 되려면 기초기술부터 완전히 확보해 나가야 한다"며 '기본'에 충실할 것을 마지막으로 강조했다. 장원락 기자 wr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