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의 고발로 노조가 물게 된 벌금은 회사가 부담해야 한다." "6시그마 운동은 근로자들을 감시하기 위한 것이다. 철폐하라." "해외에 체류하는 조종사 가족에게 왕복 항공권을 연간 14장 제공하라." 대기업 노동조합이 회사측에 내놓은 단체협약 요구안이다. 임단협 시즌을 맞아 노조가 터무니없는 요구안을 내놓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물론 노조의 요구안 중 상당 부분이 사측을 밀어붙여 핵심 사안의 승리를 이끌어내기 위한 협상 카드라지만 '해도해도 너무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경영자총협회 관계자는 "경기침체와 고유가 등으로 경영난이 가중되고 있는 상황에서 노조의 무리한 요구는 자칫 경제 회생에 걸림돌로 작용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노조 벌금까지 회사가 내라니… 올초 채용 비리로 사회적 물의를 빚었던 기아자동차 노조는 23건의 긴급 노사협의 안건을 들고 나왔다. 올해는 단협이 없는 해이지만 임금 협상을 유리하게 이끌어 가겠다는 속셈에서다. 따라서 상당 부분이 터무니없는 내용으로 채워져 있다. 올해 눈에 띄는 내용은 노조의 벌금을 회사측이 부담하고 6시그마 운동을 철폐하라는 것이다. 대신 내달라는 벌금은 노조의 파업으로 피해를 입었다며 회사가 고소·고발해 노조가 법원으로부터 부과받은 벌금이다. 노조측은 "사측이 고소·고발이나 징계를 남발하는 사례를 막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생산성 혁신 프로그램인 6시그마 운동을 철폐하라는 요구는 이 운동이 근로자들의 근로시간을 감시하는 데다 노동 강도가 세진다는 이유에서다. ◆"한 달에 절반 휴식으론 부족" 고액 연봉을 받는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 조종사 노조의 '제 밥그릇 챙기기'는 점입가경이다. 이들은 사측이 수용하기 어려운 요구 조건들을 무더기로 내걸고 들어주지 않으면 각각 4일과 5일 준법투쟁 및 파업에 돌입하겠다고 예고한 상태다. 대한항공 노조는 해외 휴식 시간 확대를 요구하고 있다. 현재 월평균 50~70시간(서울과 로스앤젤레스 2~3회 왕복 시간) 비행하고 한 달의 절반가량을 휴식하는 근무 여건에도 불구하고 비행 시간을 줄이고 휴식 시간을 늘려달라는 것이다. 영어를 못해 국제선 비행을 할 수 없는 조종사의 고용 보장까지 요구하고 있다. 아시아나항공 조종사 노조는 한술 더 떠 '해외에 체류하는 조종사 가족에게 왕복 항공권을 연간 14장 제공하라'는 요구까지 제시했다. 또 기장에게 객실승무원 교체권을 주고 여성 조종사가 임신으로 2년간 휴식해도 임금의 100%를 지급할 것을 요구 조건으로 내놓았다. 이들은 당초 '해외 숙박호텔에 4세트 이상 골프채 비치'도 요구했지만 여론의 비난이 쏟아지자 철회했다. ◆"정년은 환갑까지" 중국 상하이자동차(SAIC)로 인수된 쌍용자동차 노조는 전 직원에 대해 정년 때까지 고용을 보장하겠다는 협약서 체결을 요구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노조와 합의 없이 정리해고 등 인위적 고용 조정을 할 수 없으며 전 사원에 대해 만 58세까지 고용을 보장하는 내용의 '평생고용보장 특별협약'을 체결한 뒤 법원의 공증을 받을 것을 제안했다. 현대자동차 노조는 현재 58세인 정년을 60세까지로 연장해 달라는 요구를 내걸었다. 은행 등 금융회사 노조들도 정년을 60세로 늘려달라는 요구안을 마련했다. 이건호 기자 leek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