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검장님,이건 명백히 월권행위입니다."


수화기 너머 놀란 표정을 읽은 조순제 변호사(37)는 목소리 톤을 한층 높였다. "검찰이 행정 처분을 내린다는 게 말이 됩니까."(조 변호사) "아니 그럴 리가 없는데…. 조 변호사,구청에 다시 확인해 보세요."(지검장)


서울 종로구청은 지난해 12월 '폐수를 무단 방류했다'며 종로 일대 60개 귀금속 가공업체 가운데 40개 업체에 '폐쇄하라'는 예비공문서를 보냈다. 업체로서는 사활이 걸린 일이었다. 조 변호사에게 달려온 이들은 검사가 구청에 "폐쇄명령을 내려라"고 지시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위법사항 통보에 그쳐야 할 검찰이 그런 지시를 하다니….' 조 변호사는 이런 생각에 바로 평소 안면이 있던 지검장에게 전화를 걸었던 것.


나중에 밝혀진 일이지만 종로 귀금속 상인들이 조 변호사에게 사실을 과장해 벌어진 해프닝이었다. 아무튼 조 변호사는 구청을 설득해 폐쇄명령을 철회시켰다.


이 일을 계기로 조 변호사는 종로 일대 3000여개 귀금속상들에 자신의 존재를 확실히 각인시켰다.


조 변호사는 지난해 5월 개업한 새내기 변호사다. 그런데도 깐깐하기로 소문난 종로 귀금속상들이 그에게 전폭적인 신뢰를 보낸다.


조 변호사의 말이라면 '팥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곧이 들을 정도다. 그 나름대로의 비결 때문이다.


조 변호사는 개업하자마자 귀금속 도매상이 몰려 있는 종로에 뛰어들었다. 우연히 만난 종로 상인들에게서 자기들을 이해하고 도와줄 변호사에 목말라 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동안 이들은 주로 서울 서초동 법조타운 근처의 변호사에게 일을 맡겼다.


그러나 연말 송년회 때 얼굴 한 번 보는 게 고작이었다. 서로 친분을 쌓을 겨를은 전혀 없었다.


그러니 업계 사정에 밝은 변호사가 있을 리 없었다.


"한번 도전해볼 만한 곳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사무실도 아예 종로에 냈습니다."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던 불모지,즉 블루오션을 찾은 것이다.


조 변호사는 마산 창신고 인문계 1회 졸업생인 데다 서울대 식물학과 출신이어서 법조계 선배가 전무했다. 어차피 기댈 곳도 없었다.


조 변호사는 종로 귀금속상인들이 그야말로 '바람 앞의 촛불' 신세임을 알았다.


국세청은 탈세의 뿌리를 뽑겠다며 1년반 동안 세무조사의 칼날을 휘두르고 검찰은 가공업체가 귀금속을 가공하면서 폐수를 방류한다며 폐수단속에 나섰다. "유통업체도 아닌데 왜 도심 한가운데 있느냐"며 가게 이전을 종용하기까지 했다.


조 변호사는 정공법으로 맞섰다. 변호사 특유의 정연한 논리로 업계의 특수상황을 알리는 한편 법적으로 따질 것은 따졌다. "카르티에 티파니 같은 명품 브랜드 하나 없는 처지에 업계를 다 죽일 거냐,고부가가치 산업인 귀금속업 육성이 시급하다며 애국심에 호소하면 그제서야 고개를 끄덕입니다."


요즘 종로 귀금속상들은 할 말은 하고 산다. 경찰을 보면 도망칠 궁리만 했던 이들이 애로사항이 있으면 적극적으로 관청에 지원을 요청할 정도다. 조 변호사 덕분이다. 그럴수록 그의 어깨는 더욱 무거워지고 있다.


조 변호사는 매주 화요일 저녁 서울산업대에서 귀금속 최고전문가 과정을 듣는다.


"업계의 이해를 대변하려면 귀금속에 관한 한 반 전문가가 돼야 합니다." '종로 귀금속상 지킴이'다운 발상이다.


글=김병일 기자 kb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