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중기 금융지원 기술력 위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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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상호 < 금융硏 선임연구위원 >
중소기업 금융 문제는 선·후진국을 불문하고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쉽게 해결할 수 없는 난제다. 이는 중소기업의 영세한 규모, 취약한 교섭력,회계 및 경영의 불투명성 등의 속성 때문이다. 따라서 대부분의 국가들은 중기 금융을 시장기능에만 맡겨두지 않고 정부가 직접 시장에 개입한다.
우리나라 경제개발의 시작과 함께 도입된 중기 정책금융은 상황에 따라 새 제도가 추가되면서 현재처럼 매우 복잡한 모습을 띠게 되었다. 중기 정책금융은 대부분 창업,설비 및 기술개발 촉진,부품소재 및 지방 중기 육성 등에 주안을 뒀으나, 시간이 흐르면서 원래 의도와 무관한 기업까지 지원하게 되면서 실효성을 상당 부분 상실했다. 당초는 재무구조가 다소 취약하나 미래 성장가능성이 있는 중기가 대상이었으나 그후 우량기업이나 구조조정 대상 기업까지 지원대상에 포함되면서 정책금융 배분에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중기 정책금융은 원래의 지원목적에 맞게 대상을 선별하고 시장원리에 따라 운영될 필요가 있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우선 기술개발의 경제 파급효과를 고려할 때 앞으로 중기 정책금융은 기술혁신 기업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지금까지 우량기업과 구조조정 대상기업에 공급됐던 정책금융을 단계적으로 축소하는 대신 재무구조가 취약하더라도 기술력이 높고 미래 성장가능성이 큰 중기에 지원을 늘려야 한다. 우량 중소기업은 시장에서 상업금융회사와 증권시장을 보다 널리 활용해야 한다. 구조조정 대상 기업은 더이상 시장을 왜곡하지 말고 조속히 워크아웃 단계에 들어가 회생 또는 청산의 과정을 밟도록 해야 한다.
또한 정책금융으로부터 유발되는 리스크와 손실은 시장원리에 입각하여 기업,금융기관,정부 간에 합리적으로 분담되어야 한다. 기업은 정책금융 수혜에 해당하는 대가를 지불해야 하고,금융기관은 적절한 수준의 위험부담을,정부는 사후적으로 발생하는 손실의 일정 부분을 책임져야 한다.
이와 같이 정책금융이 재배분되는 과정에서 기존의 수혜대상에서 탈락하는 자와 새로운 정책의 수혜자가 나타나게 된다. 만약 정책전환의 속도와 범위가 클 경우에는 수혜대상 탈락기업이 단기간에 많이 나올 수 있다. 특히 경기회복이 지연되는 상황에서 탈락기업이 몰리게 되면 사회적 파장이 클 수 있다. 따라서 경기에 민감한 중기의 경우 정책전환은 점진적,단계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바람직하다.
또한 중기 금융의 문제는 정책금융으로만 해결할 수 없다. 상업금융회사가 지원대상 중기의 옥석을 가려낼 수 있는 신용분석과 심사능력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외환위기 이후 기업부실 재발방지를 위해 다양한 선진형 신용위험평가 기법이 도입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중기에 그대로 적용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금융회사가 중기 신용분석과 평가를 제대로 하려면 재무적 수치보다도 다양한 비재무적 요인들을 발로 직접 뛰어 수시로 파악하는 일이 중요하다. 이런 점에서 중기 신용위험 분석과 관련한 금융회사들의 관행을 개선해야 할 여지는 아직도 크다고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중기 금융의 문제를 금융기관의 탓으로만 돌려서는 안된다. 중기 스스로 회계와 경영의 투명성 및 신뢰성을 제고하려는 노력없이 금융기관의 정보 분석 및 평가능력을 비난하는 것은 불합리하다.
금융기관의 자금이 중기로 원활히 흘러가기 위해서는 우선 투명하고 신뢰성 있는 기업 정보가 금융기관에 제공돼야 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중기 금융 혁신이 소기의 성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정책금융기관,상업금융회사,중기 등 이해관계자 모두가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스스로 변해야 한다는 점에 유념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