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일 오후 칭다오의 하이톈 호텔. 이곳에서 열린 제4회 중국 국제가전박람회의 메인 행사는 중국 최대 가전업체인 하이얼의 디지털 TV 신제품 발표회였다. 불과 이틀전 중국 신식산업부(정보통신부)가 홈네트워크 국가 표준으로 제시한 'Itop Home'을 처음으로 적용한 제품이어서 관심을 끌었다. 같은 시간 칭다오국제회의센터에서는 중국이 동영상압축 국제표준인 MPEG4에 대응할 자신들의 표준으로 추진중인 AVS(Audio-video standard coding)에 대한 포럼이 열렸다. 이들은 중국이 정보기술(IT) 부문에서 국가적으로 밀어붙이고 있는 기술 표준화를 보여주는 사례들이다. 올 들어 중국은 해외 기술 표준에 맞서 하이얼 등 가전업계가 주도하는 Itop Home과 롄상 등 IT 기업이 이끄는 IGRS(Intelligent Grouping and Resource Sharing)를 자국의 홈네트워크 표준으로 채택했다. DVD 분야에서도 민간업계가 제안한 EVD를 차세대 국가 표준으로 정했다. 하이얼 창훙 TCL 화웨이 등 중국의 12개 가전 업체와 통신장비 업체들이 지난 5월 산업연맹을 결성한 AVS도 연내 국가 표준 채택이 유력하다. 중국 기업들은 국가 표준이 만들어지면 곧바로 상용기술 개발에 나서는 등 발빠른 행보를 보이고 있다. 앞서 하이얼이 국가 표준이 제정된 이틀 후 48인치짜리 LCD TV를 내놓은 것이 대표적이다. 또 가전업체 SVA는 비메모리 반도체업체인 셀레스티얼 세미컨덕터가 AVS 기술을 구현한 칩을 개발하자마자 이 기술을 적용한 TV 시제품을 만들었다. 중국식 DVD인 EVD는 심지어 국가 표준이 만들어지기 전에 나왔다. 처음 나왔을 때 가격대는 1000위안대였지만 지금은 900위안(약 11만2000원)까지 내려갔다. 세계 기술 표준 전쟁에 임하는 중국의 자세는 필사적이다. 올초 ISO(국제표준화기구) 회의에 참석했던 중국팀은 "중국의 무선랜(LAN) 보안분야 표준인 WAPI가 불공평한 대우를 받았다"는 성명서를 발표하고는 짐을 싸 귀국했다. WAPI를 세계 표준으로 추진하던 중국에 Wi-Fi를 채택하고 있는 미국 등이 제동을 걸자 반발한 것이다. 중국의 이 같은 전략은 해외에 지불하는 막대한 로열티 부담에서 벗어나려는 의도도 갖고 있다. 세계 최대 DVD 플레이어 생산기지이지만 중국 DVD 기업들이 잇따라 도산하고 있는 것도 로열티 부담이 크기 때문이라는 게 중국측 주장이다. 중국산 DVD 수출가격은 평균 32달러이지만 제조 원가는 13달러인 반면 로열티가 18달러나 돼 중국 기업의 이윤으로 돌아오는 것은 1달러밖에 안 된다는 것이다. 중국 정부는 "해외 로열티 부담으로 중국 100대 전자·정보통신 업체들의 평균 이익률은 4%로 마이크로소프트의 28%,인텔의 21%에 크게 못 미친다"면서 "이는 기술 표준 전쟁에서 밀린 결과"라고 분석하고 있다. 이에 따라 중국은 국제특허 출원에도 적극적이다. 중국이 출원한 국제특허는 1999년만 해도 240건에 불과했으나 지난해에는 1782건에 달해 전년보다 37.8% 증가했다. 이는 전 세계에서 가장 높은 증가율이라고 중국 언론들은 전한다. 칭다오=오광진 특파원 kjo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