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영 < 중앙대 교수 ·법학 > 올해 초 많은 논란 끝에 증권부문에 도입된 집단소송제도를 식품산업에도 도입하자는 움직임이 국회에서 일고 있다. 기본적으로 식품안전을 위한 정부의 정책은 사회의 수용정도,적합성,실효성,형평성 등을 감안해 제도로 정착될 때에 성공할 수 있다. 따라서 법 제정에 앞서 식품 분야의 집단소송제도 및 집단분쟁조정 제도가 도입될 경우 사회에 미칠 영향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는 일이 우선돼야 한다. 우선 집단소송제도는 식품산업과 함께 국가 경제와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고려해야 한다. 현재 세계 식품시장은 통합되고 있으며 실시간으로 식품 관련 정보가 교류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명확한 위해(危害)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소비자들의 무분별한 집단소송이 이뤄질 경우 국내 식품 산업의 이미지 악화로 인한 수출 경쟁력 저하와 함께 소비자들의 국내 식품에 대한 지나친 불신을 초래할 우려가 있다. 이는 결국 소비자 부담으로 전가될 것이다. 식품 분야에 대한 집단소송은 미국,일본,EU 등 선진국에서도 도입한 사례가 없다는 점도 지적할 수 있다. 식품을 섭취한 뒤 하자 입증의 어려움 등 식품 분야의 고유한 특성 때문에 식품분쟁조정이나 식품집단소송제도 등을 식품안전기본법이나 식품안전법령에서 규정한 사례는 외국에서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집단소송제도는 최종 판결이 나기까지의 과정이 타 소송에 비해 복잡하고 장기간이 소요됨에 따라 여론재판을 통해 경쟁회사의 도산을 위한 합법적 수단으로 악용될 수 있다. 결과적으로 소비자 역시 실익이 거의 없는 등 사회 전체가 소모적인 논쟁에 휩싸일 공산이 크다. 이에 우리는 집단소송제도가 가장 발달한 미국에서조차도 이의 폐지론이 대두되고 있는 현실을 참조해야 할 것이다. 사회 일각의 무책임한 이슈화 및 언론의 선정적 보도로 특정 제품에 의한 집단소송이 해당 기업 전반에 대한 이미지 저하로 연결돼 기업활동에 큰 피해를 줄 가능성도 있다. 특정 기업이 원인 규명도 되기 전에 집단소송이나 집단분쟁에 휘말려 언론에 보도됐을 때 그 기업이 회복할 수 없는 피해를 입었던 사례를 우리는 많이 봐 왔다. '공업용 우지라면 사건' '골뱅이 통조림 포르말린 사건'과 최근 '만두파동'이 해당 기업에 어떤 피해를 입혔는지를 기억해야 한다. 식품에 대한 분쟁은 기본적으로 당사자 간의 문제이고,소비자 피해구제는 분쟁조정 이전에 이뤄진다. 식품분쟁은 당사자 간 해결을 원칙으로 하며 이를 위해 소비자보호법에 의해 운영되는 '소비자분쟁조정위원회'와 제조물책임법에 의한 '식품분쟁조정위원회'가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현행 민사소송법에서는 선정당사자제도를 허용하고 있는데 굳이 소송의 남발이 우려되는 집단소송과 집단분쟁조정을 식품분야에 도입하는 것은 우리나라의 법 체계나 형평성에 맞지 않다. 소비자보호법에 의해 각 사업체는 소비자 상담실을 운영하고 있고 소비자의 피해 신고 즉시 소비자보호법에 의한 피해 보상 기준을 충분히 반영해 처리하고 있다. 특히 식품 사업자는 제조물책임보험에 가입해 직접 해결이 어려울 때는 보험회사를 통해 보상하고 있는 만큼 식품과 관련한 소비자 구제는 이 같은 현 제도를 보완하고 강화하는 방향으로 설정되는 것이 현실적이다. 식품안전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사고 발생 후 구제를 위한 집단소송제도나 집단분쟁조정제도는 사후 수단이다. 중요한 것은 안전 사고가 일어나지 않도록 사전 예방하는 것이다. 현재 한국은 세계 어느 나라 못지 않은 강력한 식품위생법과 관련 법규 및 규제 제도를 갖고 있다. 따라서 상당한 부작용이 예상되는 집단소송제보다는 현 제도를 보완하는 것에서 식품 안전을 강화하는 길을 찾아야 한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