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장 검사 관리를 맡아오던 카고·오일·탱커선을 두 달 전 무사히 외국 선주에게 인도시켰습니다. 정말 이 일을 잘 선택했다는 기쁨과 함께 세계 최고의 도장검사관이 되겠다는 의지가 더욱 강해졌습니다." 국내 최초 여성 도장 검사관인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의 신영란씨(31)는 "도장 검사는 여성이 할 수 없다"는 편견을 불식,조선업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도장 검사는 하루 종일 수십 미터 높이의 선박 철구조물을 오르내려야 하고 탱크 속을 기어 들어가야 하는 등 어려움이 많은 업무다. 판정 결과에 따라 기능공들과의 멱살 다툼도 벌어지는 등 그동안 남자들의 고유 영역으로 여겨진 분야였다. 특히 여름철의 경우 그라인더 불꽃이 튀더라도 불이 붙지 않도록 불연섬유로 만든 두꺼운 검사복을 입는 것부터가 고통의 시작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신씨는 검사 업무에 뛰어들었다. 주위에서 "제정신이냐.며칠이나 가나 두고보자"는 비아냥이 쏟아졌다. 신씨는 귀를 막고 쇳덩어리 사이사이를 누비며 페인트 배합 검사와 선체 도장 검사,탱크 내부 검사 등을 수행했다. 1년 뒤에는 "여성이 해도 되네"라는 평가가 나왔다. 페인트 배합과 습도 조절,페인트 두께 검사 등에서 섬세함과 꼼꼼함을 무기로 담당 부문에 대한 검사 승인을 남자 검사원보다 더 많이 받아냈기 때문이다. 신씨는 도장검사관이 된 동기부터 남달랐다. "1993년 11월 거제여상을 졸업하고 사무직으로 입사,검사 실적 관리 등을 맡고 있었는데 입사 3개월이 지나자마자 검사관을 시켜달라고 회사에 떼쓰기 시작했습니다. 검사관에 매력을 느낀 데다 여성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지요." 물론 회사측은 적극 반대했다. 여자가 하기 힘든 일인 데다 검사관이 돼도 받는 월급이 똑같으니 굳이 현장으로 갈 필요가 있냐며 만류했다. 해외 선주들과 공동 검사를 하려면 상당한 수준의 영어 실력과 관련 지식이 필요하다는 점도 강조했다. 이 말에 오기가 발동한 신씨는 매일 퇴근 후 야간대학을 다니고 영어회화와 도장 분야 공부를 했다. 10년 동안 퇴짜를 맞은 뒤 2004년 3월 드디어 도장검사관으로 발령을 받았다. "3개월간 도장검사관 교육을 받은 뒤 검사복과 안전벨트,안전모에 방진마스크까지 쓰고 처음 현장에 나갔던 날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하늘을 나는 듯한 기분으로 현장에 나갔지만 30m 높이의 선체 꼭대기에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보니 정말 무서웠습니다." 그는 부족한 팔 힘을 기르기 위해 즉시 아령을 구입,근육붙이기 운동에 들어가는 등 각고의 노력 끝에 두려움을 떨쳐버릴 수 있었다. 신씨의 업적을 눈여겨본 회사측은 지난해 선체구조검사관 1명,의장검사관 3명,파이프 검사관 1명 등 여성 검사관 5명을 추가로 발령냈다. 신씨는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도장 분야에서 국내 일인자가 되겠다는 포부를 갖고 노르웨이에서 인증하는 국제도장검사 자격증인 'FROSIO'를 딴다는 목표를 세웠다. "내년 시험을 위해 여섯 살짜리 딸까지 친정에 맡기고 주경야독하고 있습니다. 딸 아이를 돌봐주지 못해 마음이 아프지만 나중에 도장 분야 최고 기술자인 엄마의 모습을 본다면 섭섭하게만 생각하지는 않겠지요." 거제=김태현 기자 hyun@hankyung.com